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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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의 마사 퀘스트를 읽으며, 불우하고 결핍된 유년 시절은 어쩌면 작가 탄생의 필요 조건인가 생각했었다.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도리스 레싱과 다르게 더블린의 유복한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 교육과 명문 학교에서 교육 받으며 자랐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고등사범 영어 교사로 부임하여 가르쳤으며 스물 다섯 나이에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했던 베케트.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도 건강이 안좋아진데다가 대학 강의에 대해 회의를 느낀 베케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행과 집필에만 전념하는 삶을 택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지극히 폐쇄적인 삶을 살아갔다.

연극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 대학교때 적어도 시내 어느 극장 한군데서는 공연이 되고 있을 정도로 유행했었고 학교 연극부 학생들에 의해서도 자주 무대에 올려지던 작품. 그러면서 사람들이 늘 화제에 올리는 것은 과연 고도란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도는 연극 중에 한번도 나오지 않으며, 작품이 끝나도록 그 정체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 쯤, 실제 연극을 보지 않고 책은 더구나 읽지 않은 상태에서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제까지는.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앞에 앉아있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으나 알고는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 "고도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난 이제 정체를 알았어."

남편: "그거 뭐, '이상향' 같은 거겠지."

나: "아니, 나도 그런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아니더라구."

남편: "그럼 뭔데?"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되풀이하며 고도를 기다린다.

에스트라공: 가자.

블라디미르: 가선 안되지.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오늘은 올 것 같아서 기다리지만 오지 않고 내일은 올지 모른다 생각하며 내일이 되고, 이런 날이 계속되니 가끔 자기들이 무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상기한다.

에스트라공: 우린 약속을 받았으니까.

블라디미르: 참을 수가 있지.

에스트라공: 지키기만 하면 된다.

블라디미르: 걱정할 거 없지.

에스트라공: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블라디미르: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마침내 고도가 온것 아닐까 기척을 느낄 때 정작 이들은 반가와하기보다는 나무 뒤로 숨는 장면을 읽고서야 생각했다.

'고도'는 이들이 반드시 기쁨과 즐거움으로 기다리는 대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오히려 고도의 나타남에 대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낌새까지 느껴진다. 그들은 진정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가? 사실은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것은 약속되어져 있는 무엇이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였다. 그렇다면 고도는 인간들에게 구원을 약속한자, 인간이 기다리는 대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럴까?

기다리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보니 이들은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고 무료하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장난을 하니까 시간이 빨리 가는구나.

에스트라공: 이젠 뭘 한다?

블라디미르: 기다리면서 말이야?

에스트라공: 그래 기다리면서.

 

이쯤해서 나는 고도에 대해 나름대로 실마리를 잡고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는 삶의 종착지인 죽음을 기다리는 행위.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기야하는 종착지. 막상 가까이 왔다 생각하면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대상. 하지만 반드시 오기로 되어있는 것. 죽음!

블라디미르: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그건 그렇지.

블라디미르: 우린 약속을 지키러 나온거야. 그거면 된 거다.

우리가 태어남과 동시에 맺어진 약속이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자동적으로 체결된 약속. 살다보면 가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도 상기하게 되는 대상. 고도!

 

왜 베케트의 연극을 부조리 연극이라고 하는지, 왜 그를 일컬어 유쾌한 허무주의자라고 일컫는지는 난 잘 모른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마틴 에슬린이라는 영국의 연극학자 라고 한다. 왜 이 작품을 전위극, 실험극이라고 하는지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고 했다는 그의 말은 더 생각 안해도 알 것 같다.

고도를 삶의 종착지, 즉 죽음으로 해석한 것은 100% 개인적인 생각이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대답을 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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