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 개성 넘치는 18인의 집 아름다움에 - 홀리는 - 자연에 - 끌리는
김서령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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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경은 단순히 집 구경이 아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탐구이고, 한 사람이 만든 그만의 세계에 대한 엿봄이다.

좋은 집, 넓은 집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다른 삶, 다른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다.

10년도 더 전, 같은 저자의 <김서령의 家>라는 책을 보고서 집도 집이지만 저자의 글 쓰는 방식에 홈빡 빠졌더랬다. 그 후속편이라 할수 있는 이 책이 2013년에 나온 것을 모르고 있다가 이제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열 여덟집, 즉 열 여덟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가 나온다. 각각 그들의 그런 집을 지은 이유, 그런 집을 짓기 까지, 그 집에서 하고 있는 일 등. 굳이 내 집과 비교할 건 없다. 나는 왜 저 사람과 다르게 생겼나 비교할 것 없는 것 처럼.

열 여덟 집 주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자기 주관이 있고 소신이 강하다는 것 아닐까. 때로는 고집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그것.

저자의 인터뷰에 신문사의 사진 전문 기자가 동행했으니 사진도 볼만 하다. 학고재 대표 우찬규의 팔판동 집은 매화에 빠진 사람의 집 답게 매화음 가득한 곳이라는데, 기와 지붕과 하늘과 매화가 어우러진 사진에서는 입체감이 느껴졌다. 만발한 매화를 찍지 않았다. 하늘을 향한 몇 점 매화만 잡아서 여백을 두고, 빈 가지가 만드는 선의 구도를 염두에 두고 찍었더라.

이 책에 실린 집들을 봐도 그렇고 최첨단 초고층 아파트보다는 좁고 낮더라도 오래되고 소박한 집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현상에 대해서 이건 자생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유럽의 옛도시에 머물던 사람들이 그쪽 나라의 오래된 골목과 집들의 미학을 거꾸로 배워왔기 때문일 거라는 저자의 생각은 의외였지만 이해가 되었다.

진짜 인테리어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는, 조각가 박상희의 말에는 백배 공감. 물건, 가구, 장식, 그림 등으로 꽉 찬 공간을 보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오히려 앉은뱅이 책상 하나, 옷걸이에 걸려진 겉옷 하나가 전부인 스님의 방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스님이 인테리어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꾸민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어교사이면서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의 저자이기도 한 송승훈의 서재는 개인 서재라기 보다 작은 도서관이었다. 누구든 와서 책을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목적이 반영된 집이었다. 그가 말하는 건축에 관한 팁 중에는 재료보다 공간을 먼저 고민하라, 큰 통창 대신 맞창을 내라, 테크보다 툇마루를 만들어라, 눈으로 보기 좋은 집과 몸으로 살기 좋은 집을 구분하라 등이 있었다.

이 책의 집들을 다 둘러보고 마음이 도착한 곳이 다음 시조에 나타나 있다면 아이러니일까?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칸 지어내니

한 칸은 청풍이요 한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느니 둘러두고 보리라

이 책에 실린 집 주인 중 한 사람인 건축가 김원이 한국인의 자연관, 세계관, 건축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좋아한다는 면앙정 송순의 시조이다. 미니멀리즘의 극치가 아닐런지.

바닥에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방. 창문이 나 있고 백자 항아리 하나 놓여있는 방. 빈 방에 가까와서 가득차 보이는 방. 그런 방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나 혼자 산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 책에서 배운 말=

 

  • 소호족: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거나 출근할 필요가 없는 경우 집에서 재택근무나 온라인 근무를 하는 사람. Small Office Home Office (나 같은 사람이닷!)
  • 채나눔: 방과 방이 널찍이 떨어져 있는 구조. 방이 서로 겹치지 않는 홑집 형태라 맞창을 낼 수 있고 문만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 차경 (借景): 앞산을 끌어들여 내 정원으로 삼는다.

 

 

= 그 외 =

 

  •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이 저자에게 들려주었다는 황병준의 송광사 새벽예불 녹음. 황병준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알아보니 내가 아는 그 황병준 맞다.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 상 최고기술상을 수상한 사람.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이지만 나중에 버클리음대로 유학하였다.
  • 52쪽, "LA에 있는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호텔에 갔다가 로비에서 우연히..."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또 낯익은 이름, 필립 스탁. 엊그제 대림미술관 가서 이 사람이 디자인했다는 세계 최초 투명 의자 보고 왔잖아. 일명 고스트 체어. 호텔디자인까지 했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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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4-2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책 좋아요. 모두가 똑같아지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집이나 사람 얼굴과 모습까지 뜯어고치고 닮아가는 세상에서 주관 뚜렷한 사람들의 집이라니... 어떤 일을 하거나 삶에서도 철학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껴요!!

hnine 2016-04-20 08:58   좋아요 0 | URL
그래서 그 사람이 사는 집은 그 사람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하나봐요. 나의 철학을 갖는다는 것은 남을 흉내내는 차원을 벗어나야 하는, 오로지 자기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야하는 긴 과정인 것 같네요.
여기 나온 집들을 보며 감탄하고 집 주인들의 소신을 존경하면서도 나에게 그들의 집을 적용시켜보니 글쎄, 제가 그런 집들을 감당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역시 저에게는 저의 집! 지저분하고 정리안되있는 저의 집이지만 그건 집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요 ^^

2016-04-20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4-20 14:51   좋아요 0 | URL
예, 수정하였습니다.
이번이 두번째랍니다 오타 알려주신거요. 그만큼 관심있게 꼼꼼히 읽어주셨다는 말씀이지요.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