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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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66세된 일본인.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였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공부하였다. 일본어와 함께 자신은 두 언어의 가운데 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프랑스어를 사랑하여 현재까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강의하면서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프랑스어로 책을 발표하기도 하였고 프랑스 학술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책 <멜로디>는 12년을 그와 함께 한 개 '멜로디'를 2009년에 잃은 후 여전히 멜로디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 그가 2013년에 발표한 책이다.

멜로디는 골든 리트리버종으로, 태어난지 두달 되었을때 평소 개를 키우고 싶어했던 저자의 딸을 위해 지인의 집에서 데려와 한 식구가 되었다. 골든 리트리버는 워낙 영리한 개로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저자가 느끼기에 멜로디는 주인의 감정과 상태를 봐가며 행동하는게 보일 정도로 영특했다. 또한 자신의 기분을 표시할 줄도 알았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바로 적응하지 않고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곧 자기가 있던 곳, 보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을 멜로디라고 지은 것은 저자가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영하는데, 개가 저자의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화음과 리듬으로 가득한 음악의 집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음악과 조화로운 이름으로서 멜로디라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개 이름은 '첼로'일수도 있었고 '비올라'일수도 있었고 '소나타'일수도 있던 셈이다.

매일 산책을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옆에서 재우고, 이렇게 12년을 살았으니 식구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동안 얼마나 정이 깊어졌을지 짐작이 간다. 집을 비우고 있는 동안은 그 무엇보다도 혼자가 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개가 가장 걱정이 되는 법이고 개도 주인의 기분을 살피지만 살다보면 어느 새 나도 개의 기분과 상태를 살피고 있다는 것은 아마 개와 함께 지내본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였는지라 개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이 남다르긴 한데 그러다보니 어떤 문장은 한번 읽고 다시 한번 읽어야 뜻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개에게 산책은 생명과 직결되는 활동이다. 그것은 건강한 삶의 조건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육체적 에너지의 발산이자 연습이다. ...그러나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은 사회생활을 통제하는 시민정신이 우선하는 인간의 세계 속에 개를 들여놓은 일이자 인간의 시선, 가끔 무자비한 인간의 심판에 노출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110쪽)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지 금방 와닿지 않아서 다시 읽었더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산책하는 동안 개에게 일어나는 일을 저자가 개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주인이 "손!"하면 앞발을 내밀어야 먹을 것을 주는 행동. 내가 봐도 이건 개를 위해, 개에게 필요해서 시키는 훈련이라기 보다 보는 사람의 만족과 재미를 위해 시키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하는 쪽인데, 이 책의 저자도 이런 '훈련'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위에 썼다시피 '시민정신이 우선하는 인간의 세계 속에 개를 들여놓기 위해', '가끔 무자비한 인간의 심판에 노출시키는' 순간을 위해 최소한의 훈련은 필요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고. 가령 주인 옆에서 걷게 하다가 신호등이 나오면 초록색 불이 들어올때까지 멈춰서 기다릴 줄 안다고 한다. 목줄을 묶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우리 나라에선 많은 주거 단지에서 항상 목줄을 하고 산책시키도록 하고 있다) 멜로디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후각이라고 한다. 후각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면서 주인으로부터 멀어져도 되는 범위를 결정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물론 모든 개가 그렇지는 않다.

저자도 말했지만 개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이고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기다림"이 아닐까 한다. 주인이 이사하거나 세상을 떠난 후에도 몇 년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책 속의 멜로디도 저자가 그릇에 먹이를 담아준 후 깜빡 잊고 먹으라는 말을 안하고 외출했다 들어왔더니 그 앞에서 꼼짝 않은채 먹이를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이 그러하지만 이 책에서도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은 멜로디가 생을 마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멜로디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저자는 여전히 멜로디를 바로 옆에서 느끼며 살고 있다는 대목.

생을 다하는 순간 이 세상에서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그가 남긴 추억은 같이 했던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계속 되는 것 같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위안이 될, 위안 삼고 싶은 작은 선물이라고 해두자.

프랑스 말과 문학을 사랑하여 자신은 일본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닌 경계인이라고 자평했다는 저자. 그는 가족의 의미에 있어서도 사람과 개의 경계 긋기를 고사했던 것 같다.

 

개가 보여주는 비인간적 충실성.

여기서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없다는 뜻이다.

 

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개를 키우지 않던 사람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감정이 풍부한 글이라기 보다 담담하고 간결한 에세이의 특성을 보여주는 글이기 때문에, 평소에 개에 관심이 있거나 키우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내용에 쉽게 공감을 하겠으나 보통의 독자라면 말끔한 에세이를 읽는다는 느낌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이 저자의 글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학교에서 필리핀으로 봉사 활동을 떠나는 아들.

새벽에 집을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우리 집 볼더 (개 이름)를 품에 꼭 껴안은 것이었다.

비록 엄마인 나에게는 무뚝뚝하게 "갔다올께요"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괜찮다. 불만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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