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의 너는 무엇이었나 - 서암(西庵) 큰스님 평전
이청 지음 / 북마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가끔 절에 가기는 하지만 그건 가끔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보다 더하지 않다. 불교에 관심이 있지만 그 역시 불교를 나의 종교로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불교에서는 생명을, 또 삶을 어떻게 보고 있나,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나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어떻게 이 책을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딱히 설명할 수 없다. 서암 큰스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대상이 누구였든간에 존경받는 삶을 살다가신 분의 가르침이 또 아쉬운 시기였나보다. 내가 찾는 질문이 뭔지도 확실히 모르면서 답을 구하고 싶었고, 답을 먼저 발견하고 그 다음에 내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도 좋겠다는 얄팍한 의존심이었나보다.

 

읽어보니 서암 큰스님이라는 분은 성철 스님의 뒤를 이어 조계종 제8대 종정을 지내신 분이란다. 1924년에 태어났고 먹고살기 힘들고 배움에 굶주려 2년 기한으로 절집 머슴으로 들어간 것이 출가의 시작, 그때 나이 열여덟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비구계를 수계하고 '서암'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배움에 굶주렸던 것이 출가의 한 원인이었듯이 그는 종비장학생 자격으로 일본대학교로 유학을 가지만 폐결핵 말기 진단을 받고 학업을 중단한채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해서도 따로 치료를 받지도 않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바위굴, 암자 등에서 수행하고 강의를 다니는 동안 폐결핵이 사라졌다. 이후 봉암사, 원적사 등을 오가며, 한국 불교 선풍을 세우는데 주력하였다. 1970년대 조계종 내 종단사태가 한창일때 총무원장을 맡아 사태를 수습하고 2개월만에 사퇴, 산사로 돌아간다. 1993년 성철스님 열반후 후임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몇번 거절을 거쳐 결국 조계종 종정 자리에 오른다. 종정직을 맡고는 있지만 한번도 서울행을 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던 성철 스님과 달리 서암 스님은 종정으로서 자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년에 그는 아무 종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고, 2003년 3월 속세 나이 90세에 한 말씀 남기시라는 제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그 노인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마지말 말을 남기고 열반했다.

 

불교의 가르침을 읽다 보면 제일 자주 나오는 글자가 '無' 즉 '없음'이다. 서암 스님 말씀 중에도 '마음'이란 한갓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항상 마음을 강조하지만 이때 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은 세속에서 쓰는 마음과 매우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기쁜 생각, 슬픈 생각, 죽는 생각, 세상 살아가는 데 쓰는 가지가지 마음이 본바탕 마음인줄 알지만, 본바탕 마음이란 천지 우주 만유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고 이들이 가루가 되어서 날아간다 해도 상관없는, 불멸의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이 곧 부처라. 어려운 말이다. 서암 스님은 마음이란 말보다 마음자리란 말을 더 자주 하고 있다. 근본 마음이란 의미이다.

서암 스님이 한국 불교에서 바로잡고자 애쓰셨던 선(禪). 진리에 도달하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서암스님은 참선을 곧 쉬는 것이라고 하였다. 참선의 첫째 자세로 무엇을 따지고 하는 것은 금물이며 완전히 멍텅구리가 되라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곧 참선이라고 한다.

마침내 도를 깨우치셨냐는 물음에, 그런 것 깨우친 바 없다고 말씀하셨다는 서암 스님. 출가한 후 평생 그것을 구하고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님의 일생일진대, 아무것도 깨우친게 없다고 하셨다니. 성철 스님의 산은 그저 산일 뿐이요, 물은 그저 물이고 꽃은 꽃인데 뭘 거기에 자꾸 의미를 붙이려고 드는가 하는 말씀과 통한다고 나름대로 새겨본다.

 

이 책은 스님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청이라는 작가가 엮었는데 말씀과 행보가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 지루함은 피할 수 있게 했는지 몰라도 깊이와 집중에는 실패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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