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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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인문학에 묻다>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 실린 열일곱 명이 모두 인문학자는 아니다. 그럼 왜 제목을 그대로 고수했을까. 인문학자와의 인터뷰만 실으려던 계획이 중간에 틀려진 것일까.

힐링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시대. 더 잘 살고 잘 먹고 더 편한 세상에 살지만 힐링이 이토록 주제어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 문명과 기계 문명의 한계, 진정한 소통의 부재, 내면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 빠름이 강조되는 시대, 이런 사회에 살아나가느라 예전보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그보다 나는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본다. 우리는 정작 상처를 받기도 전에 우선 상처받을까, 상처가 생길까 두려워하는 심리가 '힐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고. 우리는 과연 힐링이 필요할만큼 치열하고 용기있는 도전을 시도나 해보았을까? 잠깐 뜨거운 물에 손끝, 발끝만 담그어보고 화들짝 놀라 어떡하냐고 발 동동거리며 치료해줄 무엇을 찾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뜨거운 물에 덴 사람은 없는데도 말이다.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슬픔이 따로 없는 것 처럼. 어딜 가면 항상 무지개가 있던가? 지금 보이는 무지개가 얼마나 지속되던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제목처럼 그게 알고 싶어서 읽은 건 전혀 아니었다. 제목이 무엇이든, 예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힘든 고비를 어떻게 딛고 일어났는지 그런 얘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도 그런 차원에서 읽게 되었다. 일종의 소극적인 대화인 셈이다. 그러니 제목따윈 아무래도 좋다. 책 속 열일곱 사람이 모두 인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상처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인간적 성숙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 이유는 상처를 재료로 우리는 뭔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한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우리가 자기의 고민을 혼자 가지고 있지 않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 실마리를 찾게 되는 이유는 '객관화'에 있다고 했다. 남에게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객관화 시키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모독 훈련'이라는 것을 소개한 진중권. 먼저 흥분하면 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상대로부터 모독을 받아도 흥분하기 보다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라고 한다. 그에게 행복에 대해 묻자, 동태전에 술국 곁들여 막걸리 한잔 하는데 너무 맛있더란다. 그리고 삶이 막 아름다워지더라면서, 행복이 뭐 대단한거냐고, 그냥 내게 이미 있는 걸 찾으면 된다고 한다.

지나온 삶을 얘기하면서 한번도 상처를 언급하지 않은 황병기는, 아무리 부인하려해도 천재성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반면 범인에서 시작한 비범인이라고 부르고 싶은 최재천의 "땀흘리며 살되 욕심내지 않기"란 말. 땀 흘린 만큼 기대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범인일 텐데 말이다.

다른 학문에서 대답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던져 버린 것, 그걸 담아야 하는게 철학이기때문에 철학은 휴지통이어야 한다고 말한 장하석.

자식은 부모의 교과서라고 말한 유미숙. 아이는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날 것이고, 나는 아이에게 책임이 있지만 아이는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 줘야 할 책임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거 잊고 나이 들어가면 노년이 구차해진다.

뇌과학자들은 화가 났다는 느낌이 들면 초콜릿을 먹어 보라고 한다고 한다. 뇌과학자 김대식의 말이다. 진짜 화났을 때와 배고팠을 때의 신체 반응이 똑같아서 초콜릿 하나를 먹음으로써 화가 풀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굳이 화가 날 필요가 없는데도 마음이 아픈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이란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 창의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비록 지금은 만족스럽지만 더 나은 만족을 위해서 '나와 세상 사이'를 일부러 불일치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때의 불일치는 자아를 새로운 레벨로 업그레이드해야만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설명은 신선하고 설득력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때는 삶의 문제도 즐기며 한다. 얼굴은 고통으로 찡그리고 있을지라도 그 문제를 파고드는 동안 살아있음을, 자기가 무가치한 인간이 아님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 실린 열일곱사람은 모두 다른 분야의 관심사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공통점은 거기 있었다.

 

400쪽이 좀 못되는 분량에, 열일곱명의 생각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겠느냐고, 어차피 피상적인 기술 밖에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저자는 최종적으로 이 책에 실린 만큼만 인터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분량을 쓰고 모아야 했고 그중에서 고르고 다듬어 이 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그만한 효과가 드러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즉, 한번 읽어볼만 하다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슬픔/그리고 어떤 순간적인 깨달음이/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혹여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휘젓고/ 가구들을 몽땅 쓸어 가 버리더라도/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며 대접하라/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그대를 청소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원한/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히 여기라/모든 손님은 저 너머에서 보낸/안내자들이니까"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

 

- 책 마지막 페이지에 인용되어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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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리뷰 덕분에 이 책이 읽고 싶어졌어요~ ^^

hnine 2014-11-16 20:42   좋아요 0 | URL
전 순오기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요. 행복은 어디에?
대답이 궁금한 분 중의 한분이시랍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한번 물어봐요.
행복은 어디에?
--> 행복은 ˝행복은 어디에?˝라고 묻지 않는 그 마음에.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인데 시간이 흐르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건강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