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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옆에서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장씨 아저씨였다.
“이제 깼구나. 지금이라도 깨워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나 하던 참인데.”
장씨 아저씨가 내 방을 다녀가신 후 나는 심한 감기인지 몸살인지를 모를 증세로 열이 오르고 땀에 젖어 끙끙 앓았던 모양이다. 만져보니 입고 있는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고 내 옆에는 물수건과 작은 대야가 놓여 있었다. 아저씨가 방에 다녀가신 다음 날인 어제 낮에 비를 맞으며 산 속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났다.
‘꿈이었구나......’
한잠 푹 자고 나서 이제 괜찮다는 말에 장씨 아저씨는 그래도 못 미더워하시더니 감기 몸살 약을 주시고는 내가 약을 먹는 것을 보시고서야 아저씨 방으로 돌아가셨다.엄마를 보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와주셨다. 열 살 때 엄마는 영영 나에게서 떠난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나를 보고 계시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지켜주고 계시다.
꿈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누구든 꿈을 꾼다. 잠자는 동안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꿈에서도 깨어나지만 나는 꿈에서 깨어났으되 깨어났다고 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머릿속 어느 한편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어서 항상 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책을 볼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심지어는 누구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꿈에서 벗어나있는 순간은 없었다. 그건 마치 누군가 늘 나를 지켜봐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내가 나가 있는 동안에도 집에 항상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는 그런 느낌이기도 했다. 나에겐 참 낯선 느낌이었는데 차츰 나에게 이상한 힘을 주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일상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걷는데 쓰고 있었다. 카메라는 손에 들고 작은 수첩과 연필은 뒷주머니에 꽂고 웬 종일 쏘다녔다.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그냥 내키는 대로, 그야말로 발길이 가는대로, 그날 기분대로 움직여 가면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무언가 카메라에 담을 거리를 찾고 있는 한 심심하거나 지루하지는 않는 법이었다. 내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이 세상의 빛깔은 같지 않다. 카메라가 없을 때 내 눈에 비치는 이 세상이 무채색이라면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색깔로 보인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 메모리를 꽉 채우면 절 아래 PC방에 가서 내 블로그의 폴더에 옮겨 놓는 것 까지. 그 일을 나는 반복하며 어제 같은 오늘,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