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주 지독한 안개였다. 아니, 안개라기보다는 마치 물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나가면서 얼굴도 몸도 점점 더 젖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딜 걷고 있는 것인지 뚜렷하지가 않았다. 아는 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낯설지도 않은 것 같은, 그런 산길이다. 몸이 점점 더 축축해져 와서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하며 계속 걷다보니 저 앞에 뿌옇게 집인지 암자인지 모를 뭔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안개 속에 잘못 본 것일까? 다시 보아도 분명 연기가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누가 있어 저기. 누가 살고 있는 거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잖아.’

다리 한 짝 들어 올려 걸음을 떼어놓는 것도 쉽지 않다고 느껴져 올 무렵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 연기 피어오르는 집에 가까워지질 않았다. 마치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던 것처럼. 하지만 이마에선 이렇게 땀이 흐르고 있는데. 이렇게 힘들여 걷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다리에 뭐가 툭 걸리는 것 같더니 내 몸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바로 눈앞에 그 집이 있었다. 다 와서 넘어진 모양이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기 위해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 있는데 안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엄마다. 엄마였다.

돌아가실 무렵의 그 창백한 얼굴 그대로, 엄마는 거기, 그 집의 방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엄마! 엄마 맞아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엄마, 왜 여기 있어요?”

입은 꼭 다문 채 엄마는 그냥 가만히 앉아 나를 보고만 계셨다.

“엄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래요?”

엄마가 무슨 말씀이라도 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가만히 보고만 계신다.

“엄마, 내가 보고 싶어 왔어요? 그래서 그렇게 쳐다만 보시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는 엄마 무릎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는데 나는 아이가 된 것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왜 우는지도 모르게 나는 그동안 한참 참았던 눈물 보따리가 터지기라도 한 듯 그렇게 울었다.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원망이었을까, 외로움이었을까. 나는 어떤 명목 아래 그렇게 눈물을 감추고 살아왔던 것일까.

그때였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계시던 엄마가 나를 일으켜 세우신 것은. 내 어깨를 가만히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는 나를 꽉 안으셨다. 그렇게 엄마 품속에 안겨있으니 마치 한데 있다가 따뜻한 집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헤매다가 편안한 쉴 자리를 찾아 앉은 것 같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어쩌면 엄마에 대한 기억을 외면하고 살고 싶었던 지도 모른다. 기억을 떠올려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 내 자신이 더 찌질 해지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엄마는 나를 계속 보고 계셨나보다. 내가 잘 커나가기를 바라보면서 내 옆에 계셨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걸 알려주고 싶으셨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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