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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그림을, 사진을, 그리고 찍고 모으고 헤치고 하기를 반복하였다. 반복이라는 말이 혹시 지루한 느낌을 준다면 다른 말을 골라야겠다. 누군가에게는 똑같은 작업으로 보이는 그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는 그 어느 날도 반복이라는 느낌이 든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형식에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저 내 의도를 제대로 나타내려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이었고, 미술 선생님은 항상 그런 나를 간섭 없이 지켜봐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신이 났다. 어떤 작품을 본선 응모작으로 출품할까 선생님과 의논하고 있을 때는 어느 덧 더위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고, 여름 방학을 한 달 여 후로 남겨 놓고 있었다. 사는 게 늘 재미없는 것은 아닌가보다고 어딘가에 끼적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멋쩍은 듯 혼자 웃었던가.

다가오는 여름 방학을 생각하다가 집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다. 지난겨울 방학, 그 사진 속의 여인에 대한 아무 답도 알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왔었다. 나는 왜 그 누구에게도 그 여자가 누구인지 물어보질 못했을까? 궁금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선뜻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알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하며 시간이 흘렀을 뿐이고 그러다가 개학날이 다가왔고, 나는 그대로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답답했다. 그냥 답답한 채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지금까지도.

 

애초에 사진과 그림을 별개로 보지 않았다는 것, 그림과 글을 별개의 작업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 미술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나에게서 발견한 특이한 점이라고 하셨고, 그것이 다른 누구의 작품과 비교될 수 없는 강점이라고 하셨다. 남들과 다른 점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내가 언제 미술대전을 목표로 하여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던가.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썼던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이 인정받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이런 이유로 나는 지난겨울 방학 집에서 본 사진에 대한 의문도 뒷전일 수 있었고, 거의 한 학기 내내 결석 없이 등교를 할 수 있었나보다.

 

“뭐하고 지내냐?”

전화벨 소리에 아버지려니 하고 수화기를 들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어, 형민~”

“요즘 통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더라. 이 바닥에 있기는 한거냐?”

“요즘 나 학교 열심히 나가지 않냐.”

내가 큭큭 웃으며 대답했다. 좀 멋쩍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해서였다.

“학교? 좋지. 학생이 학교 열심히 나간다는데 누가 뭐래겠냐.”

형민이의 목소리가 어딘지 심상치 않았다.

“학교 다니면 연락도 못하냐? 자식”

이어지는 형민의 대답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미안하다. 그런데 무슨 일 있냐?”

“무슨 일 있냐고? 상철이가 죽었어 임마.”

“상철이가 죽다니?”

“뛰어 내렸다 그 자식”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지난 번 패싸움하다 경찰서에 같이 끌려가서 제일 먼저 아버지 손에 경찰서에서 나온 이후로 상철이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 녀석 버릇 좀 잡아보겠다고 걔 아버지가 경찰서에 한참 그냥 방치했다가 데리고 나왔어. 데리고 나와서도 거의 감금하다시피 하고 학교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집에 오면 과외 선생 붙여서 공부 시키고.”

형민이의 설명이었다. 아버지가 단단히 마음먹었다는 얘기는 예전에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런다고 죽어?”

그렇게 아버지와 계속 대립하고 있던 어느 날, 아파트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상철이 아버지가 들어 오시가다 보시고는 불러서 호되게 야단을 친 그 날, 상철이는 그대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떨어졌다고 한다.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얘기하는 형민이의 말끝마다 퇴퇴 침 뱉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눈물을 위장하려는 것이다. 어차피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리로라도 울고 있다는 것을 감추고 싶은 것일 거다. 우리 셋 중 마음이 제일 여린 놈은 상철이었는데 이 녀석 형민이도 모진 놈은 아니다.

“자식, 그래봤자 저만 손해인줄 모르고, 바보 같은 자식”

우연히 우리 셋은 모두 엄마가 안계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형민이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마저 몇 년 후에 사고로 돌아가셔서 큰아버지 댁에서 살고 있고, 상철이는 부모님 이혼 후 줄곧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중학교 때 서로 어울려 다니다가 고등학교는 모두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의 매일 만나 시내를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던 우리였다.

‘그거 살다 죽으려고 태어났냐? 자식’

가까이서 겪은 두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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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2 1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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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2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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