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버지니아 울프도, 그녀의 작품 <댈러웨이 부인>도, 너무나 유명하니 귀에 익숙하긴 하지만 정작 읽어보진 않았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된것은 그 두 명성보다는 Philip Glass라는 사람의 아래 음악때문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영화 <The Hours>의 OST라고 소개되면서 나오는 이 음악을 듣는데 끝날때까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영화 역시 본적 없으나 마치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려고 건물의 난간에 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희미한 웃음인지 회한인지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장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CD를 구입해서 계속 재생 버튼을 눌러놓고 몇 시간이고 듣던 날이 있었다.

 

 

 

 

몇몇 사람은 창에서 뛰어내리거나 스스로 물에 빠지거나 알약을 삼킨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대부분의 절대 다수는 서서히 어떤 질병에 먹히거나, 아니면 아주 행운아라면 세월에 먹힌다. 위로 삼을 것이라곤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아주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왔던 모든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리고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이런 시간 뒤에는 불가피하게 그보다 더 암울하고 어려운 다른 시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은 도시를, 그리고 아침을 마음에 품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더 많은 것을 희망한다.

 (...)

그리고 여기에 아직도 그대로 차려져 있는 파티가 있고, 신선한 꽃들도 있고, 겨우 네 명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손님들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된 채 그대로 있다. 우리를 용서하게나, 리처드. 어쨌든 그것은 파티야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을 위한, 상대적으로 무사한 사람들을 위한, 아직도 이상한 이유로 살아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파티인 거지. (306쪽)

이 책의 마지막 장 내용이다. 참 끔찍도 하다. 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사실, 그건 대단한 행운이야.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커닝햄은 이 책을,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썼을까, 아니면 살아있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썼을까. 리뷰를 쓰기 전에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했으나 포기했고, 쓰면서 정리가 되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이 작품의 암울함에 가려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상당히 치밀한 구성에, 배경이 여기 저기 얽혀있는 것을 알수 있다. 책의 첫 장면이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로 시작하여 책의 마지막은 댈로웨이 부인의 연인이자 친구, 그리고 브라운 부인의 아들인 리차드가 그의 축하 파티를 몇 시간 앞두고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둘은 내용 속에 묘하게 서로 얽혀 있다.

그 외에도 작품 전체에 걸쳐 죽음의 그림자는 여기 저기에 드리워 있다.

브라운 부인이 남편의 생일 파티에 쓸 케이크를 만드는 대목.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족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은 케이크때문에 그녀는 집을 나가버린다. 멀리 떠나버릴 생각을 하고 모르는 호텔에 들어간 그녀는 호텔 방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고는 아슬아슬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아마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걸 독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자기를 이웃집 여자에게 맡기고 모르는 곳에 가있다가 둘아오는 엄마의 행동, 엄마가 그녀의 여자 친구와 키스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브라운 부인의 어린 아들 리차드. 그 역시 동성애라는 인정받지 못한 관계, 빗나가는 열정, 에이즈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다 책의 마지막에서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을 미리 암시하는 거였는지.

브라운 부인에게 케이크는 무슨 의미였을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촛점이 맞춰져 있는 삶의 지리함, 무기력. 그마저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을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 인생이 결국 그런거였다는 것. 그렇게 해석하게 된 단서를 다음 구절에서 찾아내었다.

그녀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식으로 죽어가는 것이라고. 성숙한 딸의 도움과 방의 안락함이 이렇게 좋을 수가. 그렇다면 거기엔 나이가 있을테지. 그리고 작은 위안들이 있고, 전등이 있고 또 책이 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그대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잘 하든 못하든 간에, 거리에서 그대곁을 스쳐 지나도 그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꾸려지게 된다. (298쪽)

리차드가 죽는 과정을 옆에서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던 댈로웨이 부인. 그 장면도 너무나 상세하게 그려져있다. '육체의 완벽한 침묵'이라고 묘사했던가.

 

책의 마지막 문장,

" 다 준비되었습니다."

마저도 그냥 읽어넘기지 못할 만큼, 이 책은 생각보다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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