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발랄 상큼한 노래로 시작
아이가 아빠랑 여행중.
홀로 집에 남은 나에게는 엄청난 자유가 주어졌다.
그런데 그 엄청난 자유가 실상은 어찌나 나의 일상을 단조롭게 하는지.
자유는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심플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발견까지 하고있다고 할까.
눈뜨면 어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시계보며 가족들 식사 준비, 청소, 빨래 등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그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잘때 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일만 하게 된다.
나란 사람, 타고난 집순이.
볼일 보러 잠시 어딜 가더라도 집 기둥에 허리를 고무줄로 묶고 나오기라도 한 것 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집에서 자꾸 나를 잡아당기는 걸 느낀다. 집에 아무도 없는 요즘 조차도.
그러니 요즘은 하루 종일 아파트 단지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날이 대부분이다. 덥기도 하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결심을 단단히 했다. 일거리부터 손에 잡지 않기로.
이 책 부터 다 읽고 일을 시작해야지.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 동시쓰기에 관한 책 안에서 뜻밖의 시를 만난다.
그냥 평범한 동시로 보일 수도 있는 시.
나는 오늘이 좋아
오늘 아침 일찍 새들이
나를 깨워주었고,
저것 봐!
오늘은 좋은 일이 많을 거야
해가 함빡 웃잖아
오늘 학교에서는
선생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입에서 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즐거운 오늘
안녕! 즐겁게 만날 친구도 많고
야호! 신나게 할 일도 많은
나는 오늘이 좋아
- 이준관, <오늘> 전문 -
이렇게 밝은 느낌. 특별한 이유 없이도 밝은 기운, 아니, 특별한 이유 없다면 늘 밝은 기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나에게는 동경일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는 이런 삶.
나는 내 아이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공부? 잘 하면 좋지. 돈?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 하지만, 그런 것보다 내가 내 아이에게 정말로 빌어주고 싶은 것은 이렇게 밝은 기운을 잃지 않고 살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늘 즐겁고 밝게 살 수는 없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상처가 상처로 남지 않고 면역의 기회로 단단해질 수 체력, 이런 걸 지닌 사람으로 자라주면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보아도 나란 사람은 이렇게 통통 튀는 발랄함과 상큼한 기운으로 살아 본 적이 지금까지 없었다. 기대나 희망의 자리를 걱정과 두려움이 먼저 차지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부모는 일부러 의식하고 고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받은대로 자식에게도 하게 된다. 내 기준에서 아이에게 요구하고 가르치려 한다.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주기보다, 안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말부터 하는 것은 자식이 잘 안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심정이라는 것도 안다. 알지만, 알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는거다.
험난하고 다치기 쉬운 세상, 갈수록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어쩌면 이런 나의 바람은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아도 꿈결'이라잖아.
위의 시가 나오는,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은 이준관 시인이 쓴 <동시쓰기>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