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김영순 - 엄마의 삶은 시간이 흘러 우리 모두의 인생이 된다
고혜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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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도 이제 시간있을 때 노트에 엄마 살아온 얘기좀 써봐요."

내가 내엄마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6.25때 엄마 나이 열한 살. 외할아버지께서 그때 행방불명되시고 혼자 되신 외할머니께서 엄마와 외삼촌 두분을 데리고 고생하신 얘기는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들어온 고정 레퍼토리이다. 그런데 나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엄마께서 워낙 극적으로 표현을 하시며 말씀하셔서 그런지 들을 때마다 뭉클하곤 했다.

엄마 연세 올해 일흔 셋. 엄마께서 아직 건강하실 때 나에게 들려주셨던 얘기를 어디에 일기처럼 적어놓으면 앞으로 엄마의 손주들에게도 할머니께서 이렇게 살아오셨다고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글 쓰는 것 보다 말씀하시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엄마는 그럴때마다 눈도 침침하고, 그걸 언제 쓰고 있냐고 마다하셨다.

이 책 <엄마 김영순>의 소개글을 보니 여든 다섯 되신 '김영순'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이 살아오신 얘기를 글로 남기고 싶은데, 쓸 능력은 안되고, 결국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렇게 이 책의 작가 '고혜정'은 김영순 할머니를 소개받게 된다.

유명 인사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 나이 되어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남기고 싶어하는 김영순 할머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것 같다. 고혜정 작가는 비슷한 연령대의 자기 친정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김영순 할머니와 열차례 만나며 살아오신 얘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되어 있다.

읽으면서 어떤 감동을 받게 되려니 대충 짐작을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생각 못했던 것들이 읽는 동안 불쑬불쑥 떠올랐다.

첫째, 이 할머님, 살아온 얘기의 80%는 모두 자식 얘기라는 것.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이 다 그랬겠지만, '할아버지와 어떻게 지내셨는지 좀 들려주세요, 힘들었던 기억은 없으셨나요, 혹시  자식들에게 서운한 점은 없으셨어요?' 작가가 아무리 유도를 해도 결국은 자식 얘기로 연결지으시더라는 것이다. 내 자식이 얼마나 효자이고 자랑스러운지, 한번도 부모 말을 거스른 적이 없고 쉰이 넘은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니 더 바랄게 없다는 말씀이다. '그럴리가 없는데.' 라며 그냥 받아들이지만 않는 작가도 보통이 아니고 할머니도 보통 분이 아니셨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두 아들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신 할머니의 살아오신 시간들은 충분히 존경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편 아쉽기도 하다. 할머니에게 삶의 목표, 목적은 바로 자식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할머니의 큰아들과도 잠깐 인터뷰를 해보니 자신은 다른데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것. 부모님이 그거 하나 바라고 고생하시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고, 나름대로 아쉬움을 얘기하더란다.

둘째, 같은 일을 두고 어머니와 아들, 혹은 어머니와 며느리가 각각 하는 말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둘째 아들은 맏아들만큼 고분고분 하지는 않았던 모양으로 모험심이 있어서 초등학교3학년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아이스케끼' 장사를 한다고 나선적이 있단다. 이 일에 대해서 아들이 하는 말은, 워낙 어려운 형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께서 워낙 엄격하고 용돈을 주지 않으셔서, 그렇게라도 스스로 돈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가지 에피소드는 지금도 한 집에서 층만 달리하여 사는 큰아들 내외와 작은 아들에게 아침에 밥을 다 해놓고 먹여서 출근시킨다는 것이다. 여든 다섯 나이에 힘들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오히려 기쁘게 한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에 반해,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며느리는 표현못하는 부담감을 비치더란다.

내가 대학생일때 일이 생각났다. 방학동안 나는 친구들대신 엄마와 일부러 단둘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어릴 때 엄마와 여행을 많이 다닐 기회가 없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라도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가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렇게 하면 엄마가 좋아하실것 같아서 (착한 아이 컴플렉스^^) 내가 직접 여행사에 전화를 하고 예약을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다녀온 후 엄마께서 친구분에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엄마가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숫기가 없어서 여행도 변변이 못다닐 아이기 때문에 일부러 엄마께서 대학생이나 된 나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하시는거다!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그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서른 넘어 결혼을 하시고도 오로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후부터의 얘기만 하시는 할머니. 자식이 성공한 것 (큰 아드님이 서울대법대 졸업하고, 스물 몇살 때 사시 패스를 하셨단다)이 본인 인생의 결과물이고, 그것에 대해 매우 만족하시는 할머니.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말씀하실 것이 없는 할머니.

이 책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할때의 예상과는 좀 동떨어진 기분으로 책장을 덮어야했다.

솔직히 좀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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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11-19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해자 시인이 쓴 <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2012)라는 책은 많이 다르리라 생각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퍽 낱낱이 밝혀 주셔요. 시골에서 맨손으로 산을 깎아 논밭을 일구던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는 참 놀랍기도 하더라고요. <당신을 사랑합니다>에서는 '성공했다고 보기 힘든 사람들' 이야기가 가득 실렸으니, 한번 구경해 보셔요.

서울대 법대에 붙는다든지, 고시에 붙는다든지, 이런 일이 '성공'일까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자식농사 성공'을 말하는 이야기책은 어쩐지... 듣기가 많이 힘들더라고요...

hnine 2012-11-19 04:44   좋아요 0 | URL
이 책의 할머니께서도 여든 다섯 해를 편히 살아오신 분이 아니고 고생도 많이 하시고 방도 아닌 곳에 어린 두 아들 데리고 머물면서 평생 삯바느질로 살아오신, 훌륭한 분이세요. 그런 일들이 내 자식 잘 키워 번듯한 제 몫을 하는 사람으로 키우자, 하는 바람 하나로 가능했었다니, 본인은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는데 만약 아들이 부모 기대만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만큼의 성공을 못했을때, 그럴 때엔 할머니의 인생은 그만큼 덜 성공적인 삶이 될까. 그런 생각들을 하니 착잡했어요. 이건 이 할머니 한분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고정관념이 아닌가 해서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할머니가 평범한 분이고, 김해자 시인의 책에 나오는 분들이 특별한 분들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김해자 시인은 저도 관심 가지고 있는 시인이랍니다. 말씀하신 책 둘러보고 왔어요. 책 소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