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열일곱 살 -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10대들의 심리학
이나미 지음 / 이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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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로 시작하는 책을 연달아 두권을 읽게 되었다. 두권 모두 한동안 보관함 속에 있던 것인데 한꺼번에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나미. 이분의 책은 나오는대로 거의 다 읽어왔다. 바로 이전에 읽은 책은 '오십후애사전'인데 이번엔 청소년 상담 사례를 기반으로 책을 내었다.

저자의 책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정신과의사가 쓴 책이면서도 일부러 위로하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근거불분명한 자기 개인적인 생각을 일반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건조하고 딱딱하게 들릴지라도 딱 필요한 조언을, 확실한 만큼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이것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개인적인 느낌이다. 문학, 철학, 종교, 심리학 등 분야를 망라하는 박식함은 다독의 경험과 지금까지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일까.

 

책의 구성은 특별할 것이 없다. 현재의 청소년들이 가질만한 고민들이 사례별로 한쪽에 나와있고, 그에 대해 저자의 조언이 서너쪽에 걸쳐 따라나오는 식.

여는 글 제목이 '누구나 한때는 아이였습니다.' 이다. 우리 한때 다 아이였음에도 마치 우리는 그런 적 없었던 것 처럼 아이를 대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 나이 들어 노인이 될 것임에도 우리는 영영 나이들지 않을 것 처럼 생각한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고민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슬프고 외로운 감정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데가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슬프고 외롭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문제는 그것을 좀 주책맞아 보이더라도, 내가 좀 덜 되어 보이더라도, 누구에게 잘 털어놓고 발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포함해서.

 

-술과 담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청소년에게 저자는 다른 이의 관심과 애정을 목말라하고 남의 기분이나 칭찬 등에 쉽게 좌우되는 '감정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알코올 중독에 빠질 위험이 높으며, 어린 시절 심한 정신적 상처나 상실 등을 겪은 청소년도 그 괴로움을 풀 데가 없어 술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의 경우는 술 마시는 것을 반드시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청소년들의 많은 고민 중의 하나가 부모의 불화, 무능력에 대한 혐오, 그들의 자식인 자신이 싫어진다는 것인데 부모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로 간주하고 상관하지 않는 냉정한 태도를 취하기로 '결심'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모와 나는 별개의 인생, 감정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늘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미리 걱정하는 사람 중에는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이 많다는 말에 읽는 나도 뜨끔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적절한 칭찬을 받지 못한 것이 큰 상처로 남은 경우 이것이 자아존중감과 직결된다는 것도.  덧붙여 말하기를, 낮은 자아존중감과 열등감 자체를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나를 키우는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즉, 현재 상황 자체보다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밀고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청소년 자살에 대해서, 나를 괴롭힌 사람이 두고두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할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다른 사람이 이미 죽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을 얼마나 기억할까 생각해보라고 한다. 결국 그 사람 때문에 (즉, 복수심에서) 자살을 시도한다면 자신만 손해이고, 그런 쪽으로 본다면 최대의 복수는 내가 당당하게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소위 공주병, 왕자병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애적 성격장애' 라기 보다 오히려 잠재된 우울증 환자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의외였다.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따돌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투었을 때 먼저 사과하고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사람은 '자아강도'가 매우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건 자존심 싸움과 상관이 없는 것.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 먼저 사과의 시도를 하는 것이겠다.

 

-우울할 때는 짜증을 내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음식을 많이 먹는 등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는데, 그러기 이전에

1. 자신의 내면 상태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2.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3.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정확하게 주변에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려면 1과 2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꿈과 다른 진로를 강요하는 부모님에게는, 부모님의 뜻을 당장 꺾어놓으려고 해봤자 역효과만 날뿐, 대신 자기 꿈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서 부모에게 신뢰를 얻어내는 방법을 취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로 칭찬과 기대 속에 자랐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하고 싶은 정신과 의사가 되었지만 지금도 의사가 아닌 다른 역할에 몰입하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또 반면 가끔은 의사로서의 직업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하는 사람들에 비해 (Jung에 대한 연구를 하던 저자는 국내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뒤늦게 미국으로 가서 심리학, 종교학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나 자신이 불성실한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가 있다고 한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놔두고 쓸데없는 일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도 있다고. 자기 나이쯤의 어른도 이렇게 망설이는데 청소년 시기의 걱정과 고민, 망설임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고민은 누구나 있다. 슬픔과 외로움은 누구나 느낀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과연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의 삶에 반영할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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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23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대의 고민이나 어른의 고민이나 다르지 않군요.
정리 잘 해주셔서 잘 읽었어요. 끄덕끄덕 공감되는 게 많네요.
몇 가지 새기고 마음에 담아갑니다.
소위 공주병, 왕자병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애적 성격장애' 라기 보다 오히려 잠재된 우울증 환자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의외였다.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따돌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상처받은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이 부분. 자기애적 성격장애라고 제가 마음대로 진단했던 사람이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나인님, 좋은하루 보내세요. 기온이 많이 내렸어요.^^

hnine 2012-10-23 12:33   좋아요 0 | URL
예, 십대에 해결되지 못한 고민들이 잠재되어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표출되기도 하고 그런가봐요.
의사란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전공 공부하기도 바쁠테니 의학 외에 인문, 사회, 철학, 문학, 종교 등의 다른 분야에 대해선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의 그런 생각을 깨뜨려준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였어요. 처음에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은 후로 지금까지 숨어 있는 팬이 되었답니다.
공주병 왕자병도, 물질적으로 더 풍요해졌고 소통 수단은 더 다양해졌음에도 인간 소외 현상은 더 심각해져가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인간형이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쌀쌀한 날씨 중에서도 그나마 제일 기온이 포근한 시간대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