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mister

 

우리 말로 뭐라고 해야될까? '나의 첫남자' 라고 하니 그렇고 그런 내용으로 지레 짐작될까봐 꺼려지지만, 그래도 다른 적당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 '나의 첫남자', 내가 처음 인간적인 정을 느낀 남자, 내가 처음으로 사는게 재미있게 해준 남자, 내가 처음 용서라는 것을 배우게 해준 남자이다.

 

 

 

2001년 독일과 미국 합작. 우리 나라에선 2004년에 개봉했다고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제 17살 된 제니퍼가 자기 방에서 핀으로 자기 팔뚝을 자해하여 노트 위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핏방울을 노트에 문질러 무늬를 만들며 자기 생에 대한 독설을 쏟아적는다. 자기는 이렇게 시를 쓰던가 아니면 유언장을 쓰는게 일이라면서.

그리고 이 여자아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데 얼굴에만 해도 온통 피어싱 투성이, 팔뚝엔 문신과 자해의 흔적이 숨김없이 드러나있다.

보기엔 상냥하기 그지없는 엄마와 도대체 성격이 맞지 않고 대화가 되지 않아 답답한 제니퍼는 집을 나오고,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다가 쇼핑몰의 어느 남성복 가게에 임시직으로 들어가는데 그 가게 주인인 49세 중년 남자 랜달은 이 막돼먹은 여자점원을 다루느라 골치아픈데 차차 이 여자 아이의 거짓없는 진심 한자락에 공감하게 되고, 그녀의 외로움,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제니퍼 역시 이혼하여 히피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있다가 랜달로부터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되는데.

 

제니퍼 역의 여자 배우를 나는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데, 객관적인 기준으로 말하자면 하나도 안 이쁘다. 그런데,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그녀만의 아름다움, 다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잘하지도 못하는 운전 실력으로 뉴멕시코 주 까지 가서 랜달을 위해 누군가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렇게만 씀) 를 데리고 오는 장면을 캡쳐해봤다. 간신히 설득하여 그를 랜달에게 데려가면서 그 남자의 트럭 뒤에 매달려 가는 중.

 

 

 

 

 

우울하고 갑갑한 현실은 끝내 막다른 골목까지 가지만, 그 막다른 골목에서도 할 수 있는 일, 남기고 갈 수 있는 일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소중하고 따뜻한.

 

영화가 끝나고 나는,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 바도 없이, 스스로 이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던 내 자신이 마구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결말 같기를 바란다, 현재를 힘겹게 버텨나가는 모든 삶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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