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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책 제목을 보고 바로 하루키를 떠올렸다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막상 책을 읽으면서 자꾸 연상된 것은 J.D.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였다. 단편 형식의 글 모음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문체와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셋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하고 흥미있는 책이다.
단편이라 함은 단순히 글의 길이가 짧다는 것에 의해서만 분류되는 쟝르가 아니라, 짧기 때문에 그 느낌이 그야말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물들이듯'이 아니라, '꽝' 하고 내려치듯 전달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커다란 돋보기를 준비한다.
사람이 있는 어느 장소로 간다.
말은 필요없다. 가지고 간 돋보기만 꺼낸다. 그리고 점점 가까이 한 곳에 접근시킨다.
집중적으로 관찰한다.
거기 있는 사람의 동선에 따라 돋보기도 같이 움직일 수도 있지만 되도록 여기 저기 둘러보는 것은 삼가한다.
마치 이런 식으로 한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나의 머리 속에서 연상된 대로 써본 것이다.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일체 배제하고, 작품 속 주인공의 움직임, 그것도 보기엔 아무 의미 없는 듯 보이는 행위, 또는 작품 속 인물의 옷차림, 그 사람의 잠깐동안 시선이 가는 곳, 역시 별 의미 없는 듯 보이는, 그리고 짧은 말 한 마디, 주제와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은, 이런 것들을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 알겠소? 모르면 말고.' 라고, 다소 불친절하게 툭툭 문장을 이어간 인상을 받는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는 그와 정반대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보자고 권한 사람이 이 책의 독특한 방식을 소개하느라 예로 든 이야기가 '목욕'이라는 단편이었다. 아들의 생일을 맞아 생일 케이크를 주문해놓았는데 그날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간다. 의식을 잃어 누워있는 아들을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처음엔 아빠가, 다음엔 엄마가 목욕을 하기 위해 교대로 집에 간다. 생일 케이크 주문을 받아놓은 제과점에서는 케이크 찾아가라고 계속 전화가 온다. 이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하나의 사건, 한 장면에 함께 얽혀 있으면서도 이렇게 사람에 따라 추구하는 것, 절실한 대상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이고 다른 사람의 해석은, 그리고 작가의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제목을 '목욕'이라고 붙인 의도는 짐작 조차 가지 않는다.
리뷰를 쓰고 나면 별점을 표시해야 완결이 되는데, 끝까지 별 세개와 다섯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음을 털어놓아야겠다. 결국 별 다섯개로 결정한 것은 '어쨌든'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1시간 뒤에, 혹은 1시간 전에 리뷰를 썼더라면 별 세개로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별 네개, 즉 중간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