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 - 죽을 때까지 삶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
전혜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 저자의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정말 우연이었다.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성은 다르지만 나와 이름이 똑같은 저자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책을 들춰보게 되었는데 저자 약력만 읽어보고도 대단한 분이다 싶었다. 1948년이면 도대체 한국이 어떤 상황이었는가. 스무살의 나이로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났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예일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였으며, 그러면서 그곳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6명의 자녀를 두었다. 6명의 자녀를 포함 8명의 가족 모두가 최고 학위를 취득하여 미국 교육부에 의해 가정 교육 연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것, 그것보다 더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집에 책상만 열 몇개였으며 (집 어디에서도 책을 읽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책을 안 읽던 동네 아이들도 저자의 집에 놀러오면 책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 새벽 4시가 도었든 5시가 되었든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식사는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서 함께 해야했다는 가족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 등이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그 책이 저자의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책이었다.

이후로 저자는 나의 전작주의 리스트에 오르게 되어,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 <여자야망사전>등을 나오는대로 읽었는데 이 책은 어떻게 이제야 발견해서 뒤늦게 읽게 되었다.

 

 

 

 

 

 

저자의 이전 책들도 그랬지만 그녀의 글에는 새로운 얘기가 없다. 즉, 우리가 모르지 않던, 당연한 이야기들을, 아주 평이한 글로 풀어내고 있다. 강조하려고도, 독자의 관심을 끌려고도, 미사여구를 사용하려고 애쓴 흔적이 없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녀의 머리로 지어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몸소 겪어낸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며, 적어도 저자는 작은 일로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거나 기쁨과 절망의 사이를 오락가락할 그릇이 아니구나 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국에 처음 가서 전공때문에, 동양인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아야 했던 힘든 시절, 결국 그 장벽을 극복한 방법은 실력이었다. 실력으로 인정받으면 아무도 더 이상 나를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못한다고. 이런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 아닐까? 그 실력이라는게 하루 아침 획득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을 인내와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도 개인적인 성공이나 명예를 목표로 하고 노력했던 적이 없었다는 저자.
일생을 걸고 자신이 할 일을 선택할 때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선택한 일을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책임감과 함께 그 일은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소명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목표가 개인의 영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동의 목표와 동일선상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69쪽)

얼마전 안철수도 TV프로그램에 나와, 기업의 목적이 꼭 개인의 이윤 추구를 최종적인 목적으로 하는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들어있다.

 

 

 

 

 

인복에 대해 저자는 절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복은 내가 사람에게 기울이는 정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지지리도 인복이 없어'라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 수가 없다. 베풀지 않는데 남의 베풂을 받을 수 있겠는가. (80쪽)

의외로 형제 자매와 의절하고 나는 그들이 없는 셈 치고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들에게 저자는 피를 나눈 형제와도 등을 돌리고 살면서 세상 누구와 마음을 합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 형제 자매가 설령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서운하게 했다고 해서 등을 돌리고 남같이 지내며 용서하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말한다. 여섯 자녀를 키운 분이 하시는 말씀이니 더 귀담아 듣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충격이 컸고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일이라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일이라면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책의 여기 저기서 밝히고 있다. 그러면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남편되시는 분이 매우 외조를 잘 하시고 다정다감하며 이해력이 남다른 분이라고 짐작하겠으나 그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어서 집안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육아와 가사와 학업을 병행하는 저자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은 커녕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을 벌이고 마무리는 저자에게 일임하는 스타일이었고, 대출 받아 집을 사기로 결정하는 사람은 남편, 그 뒷일은 항상 저자 몫이었다고. 오히려 내가 볼때 남편분보다는 그의 아내, 즉 저자가 이 상황을 지혜롭게 넘기지 않았나 싶다. 남편은 저자가 논문을 쓰고 있을 때 집안 일을 거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논문을 읽고 진심을 다해 격려하고 칭찬하며 사랑으로 포용해주는 남편이었고, 대신 장을 봐 주거나 아이들을 돌봐 주지는 않았지만 연구에 필요한 자료라고 하면 몇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 주고 함께 생각해 주는 평생의 동반자였기에 어떤 순간에도 남편을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고. 즉, 저자는 남편의 부족한 면을 보고 신세 한탄하기보다는 그 반대쪽을 보며 고맙게 생각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부부 사이는 절차탁마. 즉,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숫돌에 가는, 수행의 과정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즉, 학문이나 덕을 쌓는 과정과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38년 남편과 한 세월들을 돌이켜 볼때 그는 역시 최고의 이상형이고, 다시 태어나도 그와 결혼하겠다는 저자는, 과연 큰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일부러 가르침을 의도하고 쓰지 않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해두고 싶은 가르침이 담긴 문장을 꼽아보라면 다음을 들겠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 그때가 마지막으로 주어진 또 한번의 기회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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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7-30 05:37   좋아요 0 | URL
여섯이나 되는 자녀들이 있지만 현재 저자는 미국의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거주하고 계시다는 걸 알고 좀 충격적이기도 했어요. 물론 본인의 강력한 뜻에 의한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여든이 넘으신 분이...

가정생활을 오래 탈없이 해오신 분들의 말씀은 특별한 내용이 아닌 것 같아도 다 귀담아 듣게 됩니다.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살아보니 알게 되기 때문인것 같아요. '결혼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아이 낳고 달라지는 것에 비하면' 이라고, 결혼 후 여자의 삶에 대해 제가 후배들에게 곧잘 하는 말이었는데, 전 주로 부정적인 말만 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답니다.
'절차탁마'라고 저자가 표현했으니 결혼 후 가야할 길이 어떤지 말 다했지요 ^^ 그런데 그러면서 나라는 인간이 또 많이 성숙해가더라고요. pain있으면 gain 도 있다! ^^

결혼...살면서 한번 해볼만한 '모험'인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