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한다는 것 - 남창훈 선생님의 과학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2
남창훈 지음, 강전희 외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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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계속 뭔가를 읽으며 사는 내가, 새삼스럽게 읽은 책에 대해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오늘 서울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좌석 위의 전등까지 켜놓고 다 읽은 이 책에 대해서는 집에 와서 남편과 한동안 얘기 주제에 올렸다.

직업과 상관없이, 탐구하는 자세로 산다 싶은 사람이 있다. 진지하다. 스스로 공부한다. 남이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에 상관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주관이 있다. 남에게 굳이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 스스로 그것을 즐긴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저절로 멋이 풍겨 나온다. 그런게 '멋'이라고 생각한다.

'탐구'란 무엇인가? 탐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유명 연구 기관의 과학자? 유명 대학의 교수? 박사?

탐구는 흥미진진한 보물찾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탐구의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이미 나와있는 지식들을 보물찾기의 단서로 삼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인류 역사의 어떤 위대한 과학적 업적도 자연을 거스르거나 자연을 정복한 것들이 아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병을 치료하는 약이나 치료 방법이란 다름아닌 인체가 병균에 대해 싸우는 기작을 보고 흉내내는 것 뿐이다. 인간이 무엇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다. 생명체 복제조차 인간의 기술로 생명체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체가 시작되는 착상 과정을 본떠 만든 과정이다. '탐구하기'는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지구상에서 다른 모든 생명체와 물질들을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자격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탐구한다는 것은 인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밝히고,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활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고만장한 인간들. 우리에게 필요한 양만큼이 아니라, 우리 입맛에 더 맞는, 더 잘 팔리는 식량을 수요에 맞춰 온갖 기술을 이용해 대규모 축산과 경작을 한다. 광우병, 신종 플루, 조류독감, 구제역 등의 질병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지구상에선 굶어 죽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데.

1997년, 이산화탄소 등 지구 온난화와 관련 깊은 여섯 가지 가스의 배출량을 줄이기로 약속하고 이를 안 지키는 나라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교토 의정서가 체결된다.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이 이러한 교토 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하였다. 이유는?  "환경 문제에 대해 단기적인 조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미국과 전 세계의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경 문제에 있어 경제 성장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해결책이며 장기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한숨이 나온다. 과학 기술로 자연의 자정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의 오만한 착각일 따름이라고 저자도 말한다. 2003년 인간유전체프로젝트가 (Human genome project)가 당초 계획보다 훨씬 빨리 앞당겨 완결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는 원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와트슨. 그가 이 기념비 적인 일에서 물러난다. 이 일을 주도한 미국 국립보건원 (NIH)에서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얻은 인간 유전자 정보를 특허로 출원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미치광이 짓이라고 이야기하며 반대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저자는 그가 한동안 한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밀슈타인'의 예를 든다. 밀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읽고 있던 내 눈이 번쩍.

'밀슈타인? 수업 시간에 단일클론항체에 대해 배울 때 나왔던 이름, 그 사람 밀슈타인??'

저자가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 맞았다. 원래 아르헨티나 태생이지만 독재 치하의 정치적 억압을 피해 영국 케임브리지로 와서, 프레데릭 생어라는, 역시 생화학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학자를 만나 그의 권유로 면역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단일클론항체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어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요즘 생명공학 관련 연구실에서 단일클론항체 관련 시약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있을까?그가 발견한 단일클론항체 제조 방법을 특허로 출원하였다면 그 대가로 1년에 수천억이 넘는 돈을 거머쥘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특허로 출원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를 여러 차례 이 책의 저자와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뜨기 이틀 전까지, 75세의 나이에도 연구실에 나와 실험을 했다는 사람. 업적을 위해서 그렇게 실험에 평생 매진했을까? 논문을 한편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특허를 내기 위해서? 남을 앞지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요즘  중고등학생, 아니 이미 초등학생때부터 점수 따기를 목적으로 공부한다고 애석해들한다. 웃긴다. 취업 시험 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은? 논문이나 특허, 업적 평가, 성과금 제도 등에 몰두한 대학 교수들은? 그들도 다를게 없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점수를 따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 얻은 지식은 우리에게 아무 감동도 없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지식은 내가 더 알고 익혀야할 과제일뿐, 더 이상의 호기심이나 질문을 일으키지 않는, 죽은 지식이 되어 버렸고 고가의 사치품이 되어버렸다. 중세에 종교와 권위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질문이라 못박아 금지시키고, 심지어 살아있는 질문을 제기하고 연구하던 사람들을 사형시키기 조차했던 그 일이, 종교와 권위와 신념의 자리를 점수, 성과, 돈이 대신하여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저자는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인간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인간이 자연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생각해보자. 탐구란 자연과 인간의 이런 관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인간도 자연 속에서,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존재하는 다른 여러 생명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들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잠시동안이라도 자신의 몸이 1 마이크로미터, 즉 1mm의 천분의 일 크기로 작아져보고 싶다는 저자. 박테리오 파아지를 가지고 항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박테리오 파아지가  박테리아 속으로 들어갈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궁금해서란다.

120여 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공감에 공감을 더하며 읽었다. 이런 과학자들이 많아지기를. 아니, 과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때 가졌을 이런 순수한 탐구의 동기를 다시 돌아보고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책 표지의 그림은 방 천장에 추를 매달아 놓고 그것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푸코이다.

 

 

( 59쪽 둘째 줄, '유전자를 모두 풀어 헤쳐 세어보면 모두 30억 개 정도가 되지요.'

     유전자의 수가 아니라 DNA 의 염기의 수가 30억개. 이 중 유전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잘못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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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4-0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못된 내용 집어놓으신 데서 역시 나인님 ^^
저는 전혀 모르는 분야에요.^^
탐구한다는 것도 결국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군요.

hnine 2012-04-07 09:27   좋아요 0 | URL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저런 내용을 다 아신다면 저는 뭘 먹고 살아요...ㅋㅋ
그냥 눈에 뜨이길래 적어놓은거고요, Cyrus님 이벤트에 틀린 답 썼는데도 책을 보내주시겠다기에 이 책 보내달라고 했지요. 받은 다음날로 다 읽었답니다. 그 정도로 좋았어요.

남창훈 2012-04-2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에 대해 많은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잘못된 부분 지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hnine님 같은 분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아지면 더 밝고 행복한 미래가 오리라 확신합니다. 늘 건승하시기를....

hnine 2012-04-27 21:04   좋아요 0 | URL
남창훈 선생님, 들러주셔서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책 써주셔서 제가 감사드리고 싶은걸요. 실험실에 있는 사람은 논문과 실험외의 다른 글, 다른 생각과는 담쌓고 지내는것으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데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써주시는 분들을 뵈오면 과학자이면서 철학자를 대하는 듯하여 존경스럽습니다.
따님에게도 아주 좋은 가르침이 되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