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0년 6월
구판절판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뱅스타일 헤어와 서있는 포즈, 표정 의상이 거의 한 세트처럼 어울린다. 엄마의 코디일까? 스트라이프 상의와 타이즈, 안경테까지 보라색으로 맞춰 준 것은. 저 환상적인 원피스도 엄마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오버된 추측까지 해본다. 구두가 아니라 꼬지한 운동화 신은 것까지 가산점을 주고 싶어라.

이 책에 몇 안나오는 청바지 차림의 여성 모델. 더구나 '엘르'라는 팬션 잡지에까지 실린 사진이라고 해서 다시 찬찬히 보았다. 정말 횡단 보도를 바쁘게 건너가고 있는 사람을 잠깐 세우고 찍은 듯한 사진이다. 사실은 그렇게 연출된 사진. 연출된 자연스러움도 이 정도면 수준급 아닐런지. 옷깃위에 헝클어진채 내려져 있는 갈색 머리카락과 가방을 세워든 모습, 바랜 청바지와 함께 신은 부츠 색깔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레이디'란 말이 절로 나온다. 요란스럽지 않은 의상과 헤어 스타일 속에서 절제와 품위는 기본이고 위엄까지 뿜어져 나오는.

나이 지긋하신 모델분께 죄송하지만 사진을 보자마자 귀엽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연한 하늘색 와이셔츠의 둥글게 굴린 깃,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 체크 조끼, 들고 있는 상의는 베이지색 코듀로이, 거기다가 '누빔'이다. 이미지는 약간 다르지만 예전에 Turnleft님께서 찍어서 보내주신 노신사분 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진 속의 할아버지도 참 멋있으셨는데.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예전에 Vogue지에서 본 어떤 화장품 전속 모델과 참 닮았다. 그 모델은 약간 까뭇까뭇한 피부색이었다는 것만 빼놓고.
이렇게 짧은 컷은 아무에게나 어울리지 않는데 미소와 옷차림, 하얀 피부와 더불어 역시 한 세트 같이 완벽해보인다. 아래 스커트처럼 보이는 것은 긴 상의인가보다. 부끄럼 많고 긴장을 좀처럼 풀지않는 가운데 어렵게 포착한 웃는 모습이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순간 포착 기술이 대단하다.

상의의 행커치프, 머룬색 모자까지 멋있게 차려 입고, 아마 그냥 보도를 걸어가고 있었다면 이렇게 사진으로 실리지 않았을지도 몰라.

'에바'라는 이 모델의 사진은 이 책에 여러 장 실려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모델의 이 미소를 따라해보고 싶어서 사진으로 찍어놓았다. 교만하지 않은 자신감이 느껴지는 웃음이랄까. 입을 다물고도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다는 것.

학생때 종이에 빈 공간이 생기면 가끔 그려보던 여자의 모습을 닮았다. 굵은 웨이브의 긴 머리, 달걀형 마스크, 늘씬한 체형 (나와 닮은 곳이 한 곳도 없는). 저자도 이 모델에게 머리카락이 정말 예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단연 돋보인다고. 암으로 머리카락을 잃어본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길게 기르고 다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절대 연출 사진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 사진의 모델은 이 책 저자의 딸. 치마와 신발 색깔의 멋진 조화.
이제부터 아이들 사진 찍을 때 "똑바로 서서 앞을 쳐다봐!" 이런말 하지 말기.

이 사진은 이 모델의 어떤 모습이 저자의 눈길을 끌었을까 궁금해서 올려본다. 그 정도로 우리 나라에서도 흔하게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의 여자와 평범한 옷차림이기에.
아마 같은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엔 평범한 것 같은 저 마스크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나보다.


여기 알라딘에서 하도 눈에 많이 익어서인지 나온지 꽤 된 줄 알고 출판년도를 보니 겨우 작년 6월이다. 번역서인지 의식 못하고 읽을 정도로 매끄러운 번역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물론 글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많지 않은 그 글들이 평범하지 않다. 스콧 슈만은 패션, 사진 뿐 아니라 글도 매우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번역까지 보탬이 되어 잘 드러나고 있다. thesartorialist.com 이라는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 운영자인 저자가 그동안 올린 사진들을 가지고 엮은 책이라서, 이 사진을 싣고서 어떤 반응들이 올라왔다는 등의 내용들이 있다.
옷의 기본적인 용도에만 충실하게 입고 구입하는 나이지만, 옷으로 그 외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해준 책이다. 남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하여 하나의 일관적인 표현이 되게 하는 것, 이것도 자기 철학의 일종이라고 불러본다. 그 수단이 언어이든 그림이든 옷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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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11-02-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지네요~
덕분에 눈 호강하고 갑니다. ^^
(마지막 사진은 저두 열심히 봤는데.. 언니 구두 굽이 꽤 높군요. 서인영 구두 같은..
저두 그거 말고는 잘 눈에 안들어 오네요)

hnine 2011-02-15 17:30   좋아요 0 | URL
토토랑님, 이 책을 실제로 보면 눈만 즐거운게 아니라 나의 옷 입는 스타일을 슬쩍이라도 한번 점검하게 되더군요. 나에게는 그냥 옷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옷 이상이구나, 그런 생각이요. 꼭 옷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한가지 정도 누구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사진의 구두, 토토랑님 말씀이 맞네요 정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