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불구하고 - 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의 만남, 그 순간의 그림들
이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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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젊은 문인과 다섯 명의 젊은 화가가 모였다. 읽기 시작하면서 누구의 기획인지 참 괜찮다 생각했는데 다 읽은 후 에필로그를 보니 미술이론가 박 준헌이 처음 제안하고 기획을 하였고 여기에는 위의 필자로 참여하기도 한 김 민정 시인의 기획력도 많이 공헌했다고 한다. 누가 되었든 참신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 이 원과 화가 윤 종석, 읽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그의 작품은 표시가 나는 소설가 김 태용과 화가 이 길우, 어렵고 진지한 시를 쓰는 신 용목과 화가 이 상선, 톡톡 튀다 못해 적나라하기를 서슴치 않는 시인 김 민정과 화가 변 웅필, 소설가 백 가흠과 화가 정 재호, 이렇게 묶여서, 이런 책을 내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옷을 구한다, 그 옷을 적당히 접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든다, 주사기 끝에 물감을 묻혀 그 위에 찍는다, 이제 처음의 옷은 새로운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맨 앞에 소개된 화가 윤 종석의 작품 패턴이다. 이 원 시인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림과 관련된 에세이 형식의 글에서도, 화가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그녀의 뾰족하지 않으나 반짝이는 감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의 시집을 한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화가 이 길우의 그림은 극장에서 3D 영화를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 볼 때와 같은 그림들이다. 조금씩 옆으로 어긋나서 환영처럼 보이는 그림, 또는 두 개의 다른 인물이 하나의 평면에 겹쳐져 있는 그림. 종이 위를 대롱 모양의 인두로 콕콕 찍어 태워서 작은 구멍을 냄으로써 형태를 만들었다. 소설가 김 태용은 그런 그림에 대해 '언어에 구멍을 뚫을 수 없을까' 라는 문장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글 속으로 끌어 들이고. 이 둘의 대담에는 '화폭에 구멍을 뚫는 화가, 언어에 구멍을 뚫는 작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아해'를 대상으로 그려서인가, 이 상선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가분수이다. 명암 생략, 화면 속에 분분이 날리는 꽃잎이 상징하는 것은 무얼까. 이 책에서 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림에서 보이는 어떤 형태나 대상의 의미, 상징하는 바를 궁금해하여 화가에게 그것을 묻는다.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별 뜻 없이' 마음 가는대로 그렸다는 대답을 하곤 한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작가와 의미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기분, 즉흥성을 중시하는 화가.  물은 사람의 머쓱함을 나도 종종 경험해보는 지라 읽는 나도 당황할랴치면 작가는 그것을 의식 못하고 그렸으니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겠냐고 너스레를 떨며 받아치고. 화가와 시인의 이런 식의 대담은 그림보다, 글보다 훨씬 더 흥미있었다. 이런게 시너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김 민정의 시는 파격이다. 그녀의 시를 몇 편 읽어보면 왜 그렇게 불리는지 대번 알게 될 것이다. 앞의 신 용목 시인과 달리 고뇌하며 쓴 흔적도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 자신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읽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글과 만난 그림의 화가 변 웅필의 그림은 느끼하다. 어떻게 이렇게 얼굴을 정말 얼굴색으로 이렇게 그릴 수가 있는지.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잖은가. '가로 본능'이라고 말하는 그의 특기는 그 얼굴에 가로로 굵은 획을 거침 없이 그어 놓는 것. 이 얼굴의 모델이 대부분 화가 자신이라니 더 엽기스러워지기도 한다. 그가 김 민정의 글에서 주인공 '변'이라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대담중에도 서슴없이 그림 한점 사라고 하는 변 웅필 화가에게 김 민정은 가난한 시인이 어떻게 비싼 그림을 사냐면서 그냥 하나 달라고 하며 고른 그림이 하필 <6 * 9> 란다.
대형 작품을 주로 하는 화가 정 재호의 그림 속에는 여러 가지가 보인다. 복잡한 지그재그 속에 횡단보도가 보이고 서로 충돌한 차들이 보이고, 오토바이 타고 달리는 사람이 보인다.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있을 수록 보이는 것이 더 많아질 것만 같다. 작품의 제목이 너무 단순하다고 좀 고쳐보면 어떻겠냐고 변죽을 울리는 작가,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화가의 대화 속에서 그림이 다시 태어난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물들은 인격을 갖게 되었다. 사물들의 인격은 인간을 차갑고 무관심하게 대한다. 사물들의 하나뿐인 감성은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볼 줄만 안다 (210쪽).

아, 그렇구나. 우리는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인격을 불어넣기까지 했구나. 그리고 때때로 그것의 말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못듣기도 하는구나.  
에필로그에서 기획자 박 준헌은 예술의 문제는 길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고 했지만, 길이 너무 많다는 것이 때로 길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보이지 않던 길이 눈 앞에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것 같은, 바로 그런 느낌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들뜨게 했다. 표지를 더 눈에 확 뜨이게하고, 좀더 홍보를 많이 했다면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읽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라면 그런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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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바빠도 서울의 전시회를 하나 다녀와야겠어요.
가서 눈물 뚝뚝 흘리며, 그림을 하염없이 보고 와야겠어요.
그러면........

그림이 저를 위로해주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저, 가을 너무 심하게 타나봐요. ㅎㅎ

hnine 2010-10-24 12:4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예, 그러셔요. 누구랑 함께 갈까 찾지 마시고 혼자 가세요. 그래야 눈물이 나면 마음껏 울지요. 그림은 음악과 또 다르더군요.
저는 워낙 '사는건 즐거울 때보다 괴롭고 눈물날 때가 더 많다'고 보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마음이 편하다는 걸 알고서 잔꾀 부리는 것인지는 몰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