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라, 유랑인형극단! 낮은산 너른들 11
김중미 지음, 오정희 그림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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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바탕색에 인형들이 모여 있고, 위쪽을 가리키며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고 있다. 어두운 바탕색 때문에 흰색으로 쓰여진 제목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이 표지는 바로 이 책 중에 나오는 첫 인형극 공연의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난해서, 부모님이 안 계셔서, 부모가 한센병 출신이라서,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서, 이혼한 부모를 두고 있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어느 날 이 동네 희망동 한 구석에 '남궁진영 미술교실' 이란 간판이 걸리고, 남궁사부로 불리는 이 미술교실의 주인장은 동네 아이들에게 무료로 미술 지도를 하며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도 하고 때로는 더 아프게도 하면서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닐 형편도 못되는 아이들이 이 곳에 모여 서로 복닥거리며 배우고 웃고 울고 싸우며 정이 든다.
미술 교실 초기에, 서먹서먹함을 해소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남궁사부는 아이들로 하여금 각자  종이에 자기 모습을 나타낸 인형을 그리게 하고, 그 인형을 가지고 간단한 즉석 인형극을 꾸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인형을 통해 자기 소개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친구들 앞에서 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이들은 본격적으로 인형극을 만들어보기로 하는데, 아이들의 부모, 형제, 모두 동원하여 인형극 극본을 쓰고, 인형을 제작하고, 음악을 삽입하고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구하고, 조금씩 힘을 모아 완성한 끝에 춘천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인형극제에 나가기에 이른다.
실제로 오랫동안 지역 아동 공부방 일을 하고 있는 작가 김 중미의 경혐이 밑바탕 되어 쓰여진 이야기로써, 2007년 춘천 아마추어 인형극제에 나가 공연했던 작품이 이 이야기 속에 실제로 등장한다. 인형극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그 과정이 마치 과정샷 사진을 보듯이 생생하게, 그리고 이야기 형식으로 펼쳐 있어 페이지가 바쁘게 넘어가는 책이었다.
가난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 소외 당할망정 사람 사는 세상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바로 김 중미가 그리고 있는 인물들이다. 척박한 상황에서 서로 밀쳐내기 보다는 서로 부등켜 안고 살 길을 모색해나가는, 결국은 읽는 사람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김 중미가 그리고 있는 인물들. 

'도저히 안 쓰고는 배길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작가가 된 동기를 묻는 사회자에게 그렇게 대답하던 작가이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참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 속은 항상 꿈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는 부분이 많고, 내용이 진행되어 가는 것도 그렇고, 꼭 만화책을 쓱쓱 넘기며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유쾌하고 적당한 감동이 있다.
다만 결말 부분에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이사를 하고, 학교에 나가는 대신 스스로 인형극과 관련된 공부를 해나가겠다는 아이의 결심 등을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음 달 9일부터 15일까지 춘천에서는 2010 춘천인형극제가 열린다.
 --> 축제 소개
올해도 그냥 달력만 보다가 못가게 되려나. 지금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올해는 꼭 한번 가보라는 계시는 아닐지, 내 멋대로 갖다 붙이며 생각해본다.

나는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는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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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0-07-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인형극제라면 영양가 있는 휴가가 될 것 같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때로 잊고 있던 세계로 들어가보고도 싶습니다.
주류, 비주루 없이 좀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hnine 2010-07-28 16:00   좋아요 0 | URL
중전님 사시는 곳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집에서는 조금 머네요. 눈독 들이기를 몇 년 째 하고 있어요.
춘천에 가본 적이 있긴 한데 그때는 발표 거리를 가지고 새벽부터 나선 길이라 긴장해서 구경도 제대로 못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