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우리문고 11
박정애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1970년 경상북도 시골 마을 초가삼간에서 태어났단다. 초등학교 2학년때 대구로 나와서 겪은 문화적 충격으로 인하여 자신의 세계로, 소설의 세계로 숨어들게 되었다는 작가의 인상은 소박하기만 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 수경은 할머니와 여동생 수향이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 할머니의 죽음이 소설의 시작이다. 당장 갈 곳이 없게 된 자매가 이후로 기거하게 된 곳은 옛날에 수경의 아버지를 사모했으나 인연을 맺지 못했다는 목선이 아주머니네 식당이다. 식당 일을 거들며 수경이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나름대로 배움의 길을 계속해나가려 야무진 계획을 세우지만 이들 자매 앞에 펼쳐지는 일들은 어린 자매를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가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일제 시대 수경의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생활을 하며 고생하던 봉선 할머니는 수경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수경이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자 편지를 주고 받게 되는데, 그 편지를 통해 봉선 할머니는수경이와 수향이 어떻게 할머니의 손녀가 될 수 있었는지, 처녀 적에 애기라고 불리던 수경의 할머니가 어떤 기막힌 일생을 살아왔는지 자세하게 다 풀어놓는다. 열 몇 살의 어린 나이에, 하루에도 수십 명의 일본군을 받아야 했던 시절, 그러다 아이가 들어서게 되면 바로 낙태 수술을 시켜버리든가 그 전까지는 계속 군인을 받게 종용했던 치가 떨리고 차라리 죽고 싶었던 그 시간들을 겪어내었던 여자들. 그녀들의 몸은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면서 그래도 내 몸뚱이니까 소중한 것이었고 일어서야 했다고 용기를 주면서.
수경은 어미 아비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포자기했던가?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비록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어렵게 살았을망정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덕일까. 방송통신학교에 진학하고, 졸업 후 여행사에 취직할 꿈을 가지고 영어회화 그룹에도 참여하는 등 열심히 살아가는, 구김 없는 아이였건만, 수경과 수향 자매에게 일어난 일은, 여자의 몸뚱이가 전쟁터가 되어야 했던 할머니 시대의 일들이 되풀이 됨에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 만난 적은 없어도 늘 편지로 힘이 되어주던 봉선 할머니 마저 혼자서 쓸쓸히 눈을 감고, 써놓고 부치지 못한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에 대해 수경 역시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맺는다.
...환절기는 지나가는 거죠? 이 시절을 잘 앓고 지나면 저는 조금 더 강해지는 거죠? 새로운 계절은 오는 거죠? ... (마지막 쪽)
이 구절에 왜 자꾸 눈길이 머무는지. 앓고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새로운 계절이 온다는 이 구절이.
살면서 환절기는 언제고 올 수 있을 테고, 그때 저 말이 힘이 되어줄 것 같은 기대때문일까? 
저자의 말대로 삶은 언제고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는 다짐으로서일까? 
그래서 굳이 이 소설을 해피 엔딩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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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17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경 할머니의 삶은 정말 '견디는' 것이었네요.
삶의 고통을 '환절기'로 생각하면 더 강해지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 거니까... 해피 엔딩!

hnine 2010-07-17 05:59   좋아요 0 | URL
외람된 말이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며 드는 생각은,
무슨 대단한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
이렇게 견디며 사는 것,
내치지 않고 그래도 부둥켜 않고 견디며 사는 것,
그건거 같아요 삶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요.

같은하늘 2010-07-20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파란 글씨에 자꾸 눈길이 멈춰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