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커서 동화란 것에 매혹되었던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전 대학생때 아르바이트로 가르치던 어느 초등학생의 국어 교과서를 우연히 보고서였다. 아이에게 문제를 풀게 시키고는 기다리는 동안 집어든 그 아이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짧은 글이었다.
초가 지붕위의 박이 자기는 이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고 시무룩하여 하늘의 달님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의, <달과 박>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 대상의 글에서도 감동은 물론, 충분히 무언가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던 날이었다. 

그 때의 그 글은 아이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모두 나름대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이후로 가끔, 그리고 요즘들어서 자주, 동화라고 하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은 이게 과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글일까 의문을 갖게 되는 것들이 있다. 동화라고 해서 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이 등장하고 어린이의 시선으로 쓰여졌지만 어른들이 읽어야 더 적합할 그런 작품들도 똑같이 동화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읽은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이라는 책이 있다.
이용포 작가의 동화집인데, 말한대로 어린이가 화자가 되어 내용이 전개되고 있지만 여기 실린 다섯 작품 모두 요즘의 노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황혼 이혼을 하고 싶어하는 할머니라든지, 시골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자꾸 환청을 들으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얘기 (이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노인의 독백 형식으로 글이 진행된다.), 첫남편에게 버림받고 재혼하여 자식이 셋 딸린 할아버지와 재혼하여 뒷바라지 하며 살던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이야기 등. 

'어린이책'이라고 이름 붙일 때에는 이름에 대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린이가 읽어 무리없는 책을 지칭하도록 하고, 어린이가 등장하지만 어른들이 읽기에 더 적합한 책은 '동화'라는, 더 포괄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을까?  

 

 
함께 읽은 유 은실 작가의 <만국기 소년> 은 어른이 내가 읽어보았을 때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책 다운 느낌이 드는,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줄만한 내용들이었다. 아이에게도 권해서 읽혀보니 재미있어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른 어른들에게도 읽어볼만하다고 특별히 권하지는 않으리라. 특별히 동화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른들에게 권하라면 차라리 위의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책을 권할 것이다.

 

 

 

 

요즘 내게는 동화를 자꾸 따지면서 읽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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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2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6-22 21:1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님의 의견이 듣고 싶었답니다 ^^
이런 걸 따질 새 없이 스르륵 끝까지 읽히는 책이 제일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얼마전에 읽은 <싱커>라는 책은 잘 쓰여졌기는 하지만 그렇게 스르륵 읽혀질만큼 재미가 있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요.

순오기 2010-06-2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용포 작가님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에서
개구리 이마에도 뿔이 날까, 읽으면서 막 울었어요.
지금도 다시 그 장면 찾아보니 여전이 눈물나네요.
둘째 아들 달용이가 사다 준 진달래빛 스카프만 두르는 할머니의 마음...

hnine 2010-06-23 20:46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소장하고 있으시군요. 생각날때마다 바로 그 페이지를 들춰볼수 있는, 그 기분 참 괜찮을 것 같아요. (부러워요~ ^^)
이 용포 작가의 이 책은 적어도 저희 세대 정도 되어야 절절하게 와 닿지 않을까 싶은데말이지요. 이 작가의 '느티는 아프다'도 누가 권해주시던데, 그것도 읽으셨는지요. 전 아직이요.

순오기 2010-06-23 21:13   좋아요 0 | URL
이용포 작가님 '느티는 아프다, 뚜깐뎐, 내방귀 실컷 먹어라'는 사인본을 갖고 있어요. 우리 막내 이름을 작품에 쓰고 싶다고 허락받으셨는데...아직 안 썼네요.ㅋㅋ
느티는 아프다, 뚜깐뎐 검색하면 페이퍼에 작가님이 사인해주는 거 있을거에요.
그 책은 우리아들 중2때 독후감대회에서 상도 받은 작품이죠.

이분은 당신 작품을 아들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신대요.

hnine 2010-06-24 13:16   좋아요 0 | URL
예, 그 페이퍼 기억이 납니다. 말씀하신 김에 다시 가서 보고 왔어요 ^^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아들 딸을 염두에 두고 쓰시는 작가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