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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전사 ㅣ 비룡소 걸작선 28
로즈마리 셧클리프 지음, 찰스 키핑 그림, 이지연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역사는 취약 분야에 속한다. 읽어야겠다고 일부러 마음 먹지 않으면 잘 읽게 되지 않는 것이 역사 소설인데, 이 책은 다른 곳에 실린 추천의 글을 읽고서 일부러 골라든 책 중의 한권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했을 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은 듯, 떨어지려고 하는 페이지를 테이프로 붙여 놓은 곳이 많은, 그런 책이었다.
영국 카네기 상 수상작가인 로즈마리 서트클리프의 작품으로서 청동기 시대의 지금의 영국 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소년에서 전사로 통과의례를 치루기 까지의 한 소년의 역경, 그리고 그 극복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성장 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고 기록도 많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이런 장편의 소설을 구상하고 끌고 나가기란 짐작만으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다음 페이지로 계속 넘어가게 하는 힘을 지닌,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와, 가끔씩 읽은 구절을 다시 들여다보게하는 뛰어난 묘사력이 기억에 남을만 했다.
주인공 소년 드렘과 늑대와의 결투 장면 묘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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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르렁거리는 늑대의 머리가 온 세상을 메웠다. 젖어서 거뭇거뭇한 목덜미와 누런 엄니. 그 뒤론 하늘과 덤불이 엎치락뒤치락 엇바뀌었다.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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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경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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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와 가시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설레었고 낮게 기운 태양이 구름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서녘 하늘은 돌연 아궁이 속 같은 황금빛으로 불타올랐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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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구름에 불을 지피고 있고, 그래서 하늘은 아궁이 속 같이 불타올랐다는 멋진 표현.
아마 번역자의 노고도 숨어 있으리라 짐작된다.
'청동기'라는 말은 마술적인 울림을 가졌다는 작가의 말을 보더라도 그녀에게 살아보지 못한 그 시대는 어떤 마술같은 매력을 뿜어내며 다가왔음에 틀림없다.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신, 애초부터 한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평범한 배경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실패를 먼저 겪게 하고, 그 실패로 인해 자신에 대한 실망을 이겨내는 짧지 않은 시간을 겪어낸 후, 뜻 밖의 사건으로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대목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더불어 인생의 성공은 처음에 계획한 대로, 예상하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장소에서 뜻밖의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본문 중에서 사냥꾼 탤로어도 드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길은 있게 마련이야. 돌아가는 길, 질러가는 길 그리고 넘어서 가는 길도 있지.' 라고.
걷고 있던 중 벽을 만나면 걷기를 중단할 생각을 하지 말고 돌아가고, 질러가고 넘어갈 생각을 해볼 일이라는 이 말이 단지 주인공 소년에게만 필요했을까. 우리는 수시로 이 말을 떠올려야 할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을.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 책에서와 같은 늑대 사냥 대신 어떤 사건을 거쳐 소년에서 성인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도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는 집단내에서 어떤 통일된 의식을 거쳐서라기보다는 지극히 개별적으로, 내부적으로 치뤄지고 있지 않나. 실패와 시련의 시기를 거치는 것은 그 시기를 겪고 있는 동안엔 불안하고 암담하기만 하지만 그것을 빠져나오며 성인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스스로 실패를 경험했다고 낙담하는 마음에 격려와 위안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