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하루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센터 문학총서 1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류리수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왜 일본 소설에는 이렇게 혼령이 많이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혼령, 이 세상에는 없는 존재, 심지어 이 책에는 곰 토템 사상의 일종이라고 생각되는 곰 신(神)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처럼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난다거나, 갑작스런 귀신의 출현에도 글 속의 주인공들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통 인간 사이의 관계와 같은 친숙한 관계로 '사귀어' 가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와 문화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저자 가와카미 히로미는 1958년생으로, 교직 생활을 하다가 이 책 <어느 멋진 하루>로 상을 받으며 비교적 늦게 문단에 데뷔했다고 한다. 나는 물론 처음 접하는 작가이다. 아홉 개의 단편으로 묶여져있는데 서로 주인공이나 내용이 연결되는 것들도 있는데 화자가 줄곧 '나'로 등장하기 때문에 나머지 단편들도 원래 모두 연결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처음 책장을 들추는 순간부터 어리둥절함으로 시작된다. 제목이 '곰'. 주인공 '나'와 곰이 강가로 산책을 가는 짧은 이야기이다. 곰은 말도 하고 포옹도 하고 사람과 함께 도시락도 먹는다. 하루를 그렇게 잘 지내고 헤어진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화적인 내용도 아니다. 뒤에 보면 혼령들끼리의 성적인 관계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어지는 '여름방학'이라는 단편에서는 배밭에 거주하는 작은 요정인지 혼령인지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데, 끝까지 구체적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배를 물어뜯고 사는, 하얀 털이 나있는 작은 무엇이라는 것 밖에는.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혼령은 이렇게 사람이 사는 어디에나,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한다는 것? 그것인가? 몇년 전 돌아가신 작은아버지가 종종 나타나 주인공과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누는 '가을들판', 혼령들의 연애 상담을 들어준다는 내용의 '갓파 구슬'에서는 혼령들끼리도 연애를 하고 실연을 당하고 성관계로 맺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혼령들은 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겠지. '크리스마스'라는 단편에서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서와 같이 파란 호리병에 사는 여자 요정이 등장하고, '봄이 되다'라는 단편에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혼령과 부부로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혼을 쏙 뺏아가는 인어가 등장하는'안놔줄테야'라는 단편, 마지막으로 처음에 등장했던 곰이 다시 등장하는 '풀밭 위의 식사'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귀신 일색인 이 책을 덮으면서도 이런 내용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갸우뚱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책 표지에 '세상에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로해줄 따뜻한 이야기' 라는 안내문구마저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책 자체는 무척 가볍고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었으나 다 읽고나서도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모르겠는, 수수께끼 같은 책. 모처럼 색다른 소설을 접할 기회를 주신, 이 책을 선물해주신 분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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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3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11-30 16:2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는 문과에 가까운 이과라고나 할까요. 별로 이과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꽤 오랫동안 몸 담고 있던 일이니 어딘가 티가 나긴 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