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몇달 전 닐 게이먼 각본의 영화 <코렐라인>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그의 신작이 나왔다. 일가족이 모두 살해되는 가운데 그 집의 막내인 아기만이 스스로 침대를 기어나와 살아남는다는 설정부터 시작해서, 그 아기가 기어나온 도착지인 공동 묘지가 이후로 줄곧 소설의 주 배경 무대가 된다는 것부터 독자의 눈길을 붙들어 놓는다.
저자가 어릴 적 읽은 동화책 <정글북>과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실제로 저자의 두살 난 아들을 집 근처 공동 묘지에 자주 데려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게 했던 경험을 살려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완결되기 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니, 지금도 닐 게이먼의 머리 속에서 대기중인 작품들이 꽤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면 별 흥미를 못 느껴, 환타지 소설은 별로 읽은 것이 없었는데, 환타지 속에서 상징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점차 새로운 재미가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해리 포터가 그러했듯이, 이 소설에도 역시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어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 아이는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 소설의 그 인물의 이름도 재미있다 '노바디'. 노바디는 묘지의 유령들의 손에 자라게 되고, 특별히 '사일러스'라는 가디언의 지도와 보호를 받으며, 완전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한 경험들을 겪어나간다.
서양에서의 공동 묘지가 우리 나라와는 좀 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죽음의 이미지가 드리워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묘지도 죽은 영혼들이 주축이 되어 나름대로 하나의 세상을 이루어, 으시시한 분위기만 나는 곳이 아니라 또다른 인간의 세상처럼 그려지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은 이런 환타지 소설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때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세계가 되기도 하고,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는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사후의 세상이 되기도 하며, 아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우주 너머 어느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묘지의 담장을 경계로 이승과 저승, 두 세계가 구분이 되는데, 저승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되 이승과는 분명이 구분하여 묘사하고 있다. 제일 큰 차이는 저승의 세계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것. 그래서일까? 갖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묘지 밖 이승에 비해, 오히려 묘지 내의 세계는 안정되고 편안한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역설적인 구성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음을, 하루 하루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모험과 도전의 여정임을 생각해보라는 것 아닐까? 몰라서 두려운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보면 더 따뜻하고 편안한 곳일 수 있음을 생각해보라는 것 아닐까. 그래서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이다.

   
  "너는 아직 살아 있어. 너한테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말이지.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그리고 어떤 꿈이든 꿀 수 있고 말이야. 네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면, 세상은 변해. 그게 바로 잠재력이라는 거야. 하지만 일단 죽으면 잠재력은 모두 사라져. 끝나는 거지. 그때는 살아서 한 행동의 댓가를 치르는 거야. 이름만 남지. 너는 이곳에 묻힐지도 모르고 심지어 이곳에서 걸어 다닐지도 몰라. 하지만 죽으면 잠재력은 더 이상 발휘할 수 없어." (200쪽, 사일러스의 말)  
   


작가의 상상력과 스토리 구성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천부적인 재능의 환타지 작가라는, 닐 게이먼에 대한 세간의 평판에 이의를 달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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