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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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라는 책의 제목이 단순히 책의 제목으로서만 보여지지 않는 시기를 살면서 읽어본 공선옥의 이 소설집은, '역시 공선옥'이라는 확인도 되었으나 전작 <명랑한 밤길>에는 좀 못미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쳐갔다.

야쿠르트 배달원 엄마가 돈이 융통이 안되어 여기 저기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통사정 하는 것을 본 주인공은, 학급 공돈을 잠시 맡아 달라는 반장의 부탁으로 보관 중이던 돈의 일부를 엄마 가방에 몰래 넣어 놓는다. 나중에 엄마가 월급을 받으면 다시 채워놓겠다는 심산으로. 하지만 남은 돈 마저 오빠에게 뺏기고, 어쩔 수 없어 반장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후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니던 중, 문득 옆에서 모르는 누군가의 음성, '난 죽지 않는다니까. 내가 누구 좋으라고 죽냐, 죽기를' 하는 소리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선다.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나는 죽지 않겠다>의 내용이다.
<일가>를 읽으면서는 다소 내용의 비약이 느껴졌는데, 느닷없이 오촌 당숙이라며 중국에서 주인공의 집으로에 찾아온 아저씨가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기한없이 길어지자 식구들의 불편함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고, 사소한 일로 아빠와 다툰 후 엄마가 가출해버리는 일이 일어나자 아저씨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홀연히 주인공의 집을 떠난다. 주인공 역시 아저씨의 체류로 인해 불편해하며 아저씨가 떠나가 줄 날을 기다렸긴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문득 그 아저씨 생각에 눈물이 난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제일 공선옥 답다고 느껴졌던 글은 <라면은 멋있다> 였다. 공선옥 특유의 자존심, 동정을 구하지 않겠다는 이 악물음이  잘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프다는 말 대신 '가슴에서 버저가 울린다'라고 말하면, 굳이 가슴 아프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는 주인공은, 웬만큼의 배짱도 있고 자신의 상황을 비극적으로만 몰고 가지 않는 당당함이 있었고, 마음의 여유와 감성을 잃지 않아 남자 친구인 주인공으로 하여금 같이 있으면 자꾸 자신이 착해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는 여자 친구 '연주'는 어쩌면 주인공보다도 더 맘에 드는 캐릭터였다.
<라면은 멋있다>의 주인공이 연속해서 등장하는 <힘센 봉숭아>에서는, 주인공이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알바집 아줌마의 깨어진 봉숭아 화분을 사러가는 대목에서 내용의 다소 어색한 비약이 느껴졌고, 십대의 임신이라는 같은 경험을 엄마에 이어 딸도 겪게 되면서 평소 엄마에 대한 미움이 사랑과 동지 의식으로 급전환 한다는 내용의 <울엄마딸>도 다소 싱거웠다.
마지막의 <보리밭의 여우>는 의용군으로 갔던 작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귀향을 서로 쉬쉬하는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 속에서 초등학생의 눈으로 본 상황을 그린 이야기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이름 붙어 출판되긴 했지만,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며 쓴 적이 없다는 작가 후기 중의 한 대목을 읽자니, 청소년기를 훨씬 지난 어른이 되어서도 소위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는 것에 여전히 끌리고 있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어렴풋하게 답을 듣는 것 같다. 

내가 아직 온갖 잡다한 지식이라든가 딱딱한 이성의 지배를 받기 전의 상태에서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였던 그때의 감성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지탱시켜주는 강력한 힘인 것만 같다. 모든 어른들은 청소년 시기의 감성들을 야금야금 빼먹으며 늙어가는 것만 같다. 이글을 쓰면서 나는 그 감정들의 최대치를 기억해내는 특별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렇게 쓸 수 있는 저자, 여전히 공선옥은 공선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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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6-18 12:33   좋아요 0 | URL
흔치 않은 타입이지요. 신경숙과의 차이가 바로 거기 있지 않나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신경숙은 그냥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상황에 푹 빠지는 수동성을 보이고,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반면, 공선옥은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도드라지지요. 전 신경숙도 싫어하진 않습니다만, 저에게는 공선옥이 조금 더 매력있네요. ^^

2009-06-18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6-18 12:36   좋아요 0 | URL
바탕 색을 연노랑으로 바꾸고 나니 푸른 색 지붕과 안어울리잖아요. 그래서 지붕까지 바꿨네요. 서재 이미지 그림은 제가 만든 시나몬 롤 (다린이말로는 달팽이 빵) 맞아요. 저의 빵까지 알아봐주시다니, 감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