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운의 일기- 

엄마가 허락을 하실까? 어린이 대상의 영화라고는 하지만 처음으로 반 친구들끼리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기로 약속을 하면서도 겨운이는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나, 엄마가 허락을 안하시면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말하나. 친구들이 나를, 우리 집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영화관람에 대한 기대보다, 새로운 걱정거리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겨운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저녁때 밥을 먹으며 겨우 말을 꺼냈다.
"엄마, 내일 토요일에 우리 반 애들이 '빨강머리 앤' 영화보러 가는데 같이 가재요."
"너희들끼리 가는거야? 어디서 하는데 그래?"
"신영극장이요. 가까우니까 시간 맞춰서 금방 보고 오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애들끼리 극장엘 간단말이니?"
"미소도 가고 송이도 가요. 걔네들 엄마는 허락 하셨대요." 
거기까지 들으시고는 엄마는 생각중이신지 더 이상 대답이 없으신 채 식사만 계속 하셨다.
"언니, 그거 나도 봐도 되는 영화지?"
갑자기 새운이가 끼어든다.
"어린이  영화니까 되겠지 뭐."
"나도 가면 안돼?"
"너도? 안 돼. 우리 반 친구들끼리 가는거란말야."
"나도 보고 싶은데. 그냥 따라만 가면 되잖아."
"다른 애들은 다 혼자 오는데 나만 동생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어."
아직 엄마 허락도 완전히 안 떨어졌는데 저렇게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다니. 겨운이는 엄마 허락 받기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말문을 꺼냈는데, 저렇게 쉽게 따라붙으려 하는 새운이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래, 새운이도 데리고 가서 영화 보고 오너라."
엄마에게서 허락이 떨어지긴 했으나, 새운이를 데리고 가라신다. 아, 싫다.
겨운이는 안다. 이럴 때 동생까지 옆에 데리고 나타나는 아이를 다른 애들이 어떤 눈으로 볼지를.
'아마 나까지 아이들에게 따돌림 받을지도 몰라.'
엄마가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하실 줄 이미 알고서 일부러 엄마 계신데서 말을 했을거라 생각하니 새운이가 얄미웠다. 

저녁을 다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겨운이는 신이 난 새운이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넌 안돼. 내일 영화는 이미 내 친구들과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동생을 데려와도 된다, 뭐 그런 말은 없었단말야. 그러니 나만 동생을 데리고 나갈 순 없어." 
"엄마가 분명히 나도 데리고 가라고 하셨는데!"
새운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따라갈 기세이고, 겨운이는 막막하기만 하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난 후 3시에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친구들과 약속을 했다.
겨운이는 집으로 돌아오던 발길을 돌려 다시 학교로 향했다. 지금 집으로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던 새운이를 데리고 가야만 한다. 겨운이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학교 축구부 아이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 조회대 뒷쪽의 시계가 10분전 3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향했다.
반 친구들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3시에 시작하는 영화 표를 사가지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겨운이는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한번 휘 둘러 보았다.
책으로 이미 읽어서일까. 영화가 별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위로 자꾸 새운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혼자 종이 접기를 하며 놀고 있던 새운이가 달려든다.
"언니, 왜 이렇게 늦어?"
"어~ 영화 시간을 잘 못 알아서, 집에 들렀다 갈 새가 없었어. 지금 영화 다 보고 오는 길이야."
"응. 그랬구나."
따라가겠다고 떼를 쓸 때와는 딴 판으로 웬일인지 새운이가 그대로 곧이 듣는다.
겨운이는 그만 새운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그깟 영화가 그렇게 대수였을까?
"새운아, 그거 그렇게 접으면 안돼지. 이리 가져와봐. 언니가 접는거 가르쳐 줄께." 
겨운이는 가방을 던져 놓은 채 새운이가 종이로 공룡 접는 것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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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9-04-1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제발 이 작품이 한권의 멋진 동화책으로 출간되었음 좋겠어요.. 후편을 기대하겠습니다. ^^

hnine 2009-04-17 11:59   좋아요 0 | URL
에궁~ 무슨요. 이렇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인걸요.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래가 춤 출려고 그래요 ^^

마노아 2009-04-1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안의 겨운이와 새운이가 다 있잖아요. 정겹고 애틋해요.^^

hnine 2009-04-17 11:59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겨운이의 입장도 되어보고, 새운이의 입장도 되어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