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거닐다
이윤기 외 지음 / 옹기장이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해인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해인>의 칼럼에 기고되었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을 스물 네명의, 스물 네 편의 글이 실려있다. 번역가 이 윤기, 이 현주 목사, 화가 이 철수, 작곡가 김 영동, 전 우익, 유 홍준, 권 정생, 김 훈, 리 영희, 그리고 대통령 이전의 노 무현 등등.
책의 맨 처음 실린 이 윤기의 '불립문자래요, 절망인가요?'는 그의 다른 저서에서 읽은 적이 있는 글이다. 실제로 해인사 가까이 암자에 머물면서 쓰여진 글도 있고, 속세의 한가운데서 속세를 살며 쓰여진 글도 있다. 자신의 직업과 관련하여, '말'로 표현되어 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이 윤기의 글도 좋았고, 기르던 개 바우의 목에 목줄을 매면서 문득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놓고 있는 사슬을 떠올린 이 현주 목사의 글도 좋았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어떤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훌훌 사슬을 끊듯이 자유로와지는 것이라는, 그것이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로 말미암은 자유라는 그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화가 이 철수는 그림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올리는 글들 또한 그 사람 이 철수를 이 철수로 인식되게 함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바, 여기 실린 짧은 글 역시 그랬다.
'여러 해 전에 호도나무인 줄 잘못 알고 심었던 가래나무 그늘 덕을 여름내 보고 있습니다. 이 그늘이나마 창문 앞에 있지 않았으면 여름이 무덥고 마음은 더 답답하였지 싶습니다...(중략) 돌아보면, 가래나무 잘못 심기듯이 제 삶도 그랬을까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래나무가 호도나무 대신 창 밖에 무성한 그늘을 드리워 제구실하듯, 모자라는 대로 가꾸어 살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부지런하면 한세상 살아지지 하고 지냈습니다. 이제는 살다가 세상에 작은 쓸모나마 생기면 고마운 일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뽑은 베스트 구절이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아서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오히려 내 눈에 들어왔을지 모를 책표지, 글과 글 사이에 가끔씩 등장하는 온통 흑백의 백 종하의 사진들은 글 못지 않다. '불립문자'라 제목 붙이고 싶었던, 장면 같은 사진들. 212쪽의 사진을 보면서는 특히 그랬다.
생각보다 빨리 읽혀 조금은 서운했던 책이었다. 

(2007년 6월에 읽고 다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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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9 0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