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예상할까. '그리운 메이 아줌마'의 메이 아줌마 같은 인물을 연상할까? 아직 푸릇푸릇한 세대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안겨주고 떠나는.
제목의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인물은 실제로 할머니도 아니었고, 아르헨티나 라는 나라 출신인지 그것도 명확하지 않다.  병으로 엄마를 여의고 허한 마음의 아빠는 묘한 분위기의, 사람들과 동떨어져 오랫 동안 혼자 낡고 오래된 건물에 거주하는 마을 여인에게서 뜻밖의 안정을 찾게 되고, 그런 아빠의 변화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주인공 미쓰코는 그 집을 드나들며 차츰 아빠를, 그리고 그 여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백 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분량이고, 어려운 말로 쓰여진 소설도 아닌데, 읽고 나서의 느낌을 뭐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다. 혹 길고 지루하고 닌해힌 말로 쓰여진 책이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의도가 전해지면 그것으로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은 도무지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지를 않는다. 미쓰코라는 인물 성격도 파악이 잘 안되고, 엄마가 죽은 후 아빠가 '만다라'라는 석조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국적이고 기이하기 까지 한 외국 여인에게서 심리적 평온함을 얻고 그 속에 안주하기 시작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며, 왜 또 하필 아르헨티나인가? 글 중에도 미쓰코는 그 여인을 본명인 '유리'라고 부르고 있음에도 제목을 엉뚱하게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붙인 까닭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는 사진 속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얼굴 만큼이나 애매하고 모호한 채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의 느낌이란.
책의 중반부 정도부터 등장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삽화는 아빠가 만들고 있는 만다라를 가리키는 것인가?
결국 난 이 소설과 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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