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사진관
최창수 사진.글 / 북하우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기록에 멋진 사진이 군데 군데 곁들여져 있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사진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어떤 경로로 어디를 여행했느냐는 발자취보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곳은 지구별이라는 한 땅덩어리.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지구별 어딘가에서 우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애써서 잘 잡아낸 사진들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 아래 조그맣게 표기된 지명들은 그 사진이 찍힌 장소로서의 의미일 뿐. 들어본 지명은 어디에도 없다. 책의 앞부분에 저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닌 곳 (몽골, 중국, 티벳, 인도, 파키스탄, 에멘, 에티오피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네팔) 을 표시한 지도를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한번 보고 더 들춰보지도 않았다.
수만 마일을 여행하는 것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데, 아무래도 책을 읽는 것이 직접 몸으로 겪어내는 여행을 하는 것만 할까.
군복무 중이던 저자는 어느 날,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는 동갑내기 어떤 사람의 홈피를 보고 자극을 받아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역시 우연히 보게 된 유명한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첩을 보고, 사진에 대한 열정이 생겨 그의 여행은 더 좋은, 완벽한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이라는 목적을 품게 되었단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가 내셔널 지오그라픽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사진을 포함해서, 실물이 과연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싶은 사진들, 특히 인물 사진들이 잔뜩 들어있다. 겉표지 사진을 책 속에서 다시 한번 만나 보라 (215쪽). 몽골의 고비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이다. 무지개가 하늘에 어떻게 저리 걸려있을 수 있을까. 일부 인물 사진들은 연출이 가미된, 예를 들면 마을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나란히 앉혀 놓고 셧텨를 눌렀다던지, 산발적으로 달리는 아이들에게 한 방향으로 동시에 달려보라고 요구를 했다던지, 그랬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런 솔직함때문에 더 마음 놓고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의 역동적인 순간이라면서, 내가 미처 모르는 얼마나 많은 풍경이 아침에 펼쳐져 있는걸까 그는 말했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내가 미처 모르는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 지구별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걸까 생각했다.
긴 여정을 마치면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그런 기대가 자신을 옥죄는 강박이 되더라는 말, 그런 집착과 욕심을 약간 버리자 슬슬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후기 속의 한 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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