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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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완벽한 하루라 하면 어떤 일상을 기대할까. 이 책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 드는 순간까지 죽음만을 꿈꾸는 스물 다섯살 난 남자의 하루의 기록이다. 저자가 자전적 소설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직도 살 날이 끔찍이도 많이 남았다는 것에 절망하며, 우울하고 반복되는 일상, 더 이상 아무 흥미 없는 이 세상에서 그만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주인공 자신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사람이며, 번뜩이는 아이디어 창고인 것이 문제. 최신식으로 구비된 자신의 아파트가 마음에 안들어, 일부러 부식시키고 흠집을 내고, 바닥을 들어내고, 거실 한가운데 사과나무, 토마토 등을 심어서 생명력이 가득 찬 공간처럼 만들었다고 흐뭇해한다거나, 자신의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화장실 배관을 타고 클린턴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거나, 돈만 생기면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닥치는대로 사서 모으는 습관, 물리적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 대신, 도레미파솔라시도 같은 음계를 나타내는 음악 폭탄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그는 마침내 휴가 기간도 자신의 아파트 건물의 엘리베이터 속에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온갖 생필품을 다 엘리베이터 속으로 옮기고서, 그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지금 이국적인 휴양지에 와있다고 상상한다. 이런 재미있는 사람이니, 단조로와 보이는 세상이 따분하게 여겨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들, 그리고 유머로 가득찬 이 책의 저자 마르탱 파주는 파리 생으로, 대학에서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인류학 등을 전공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인문학 계통을 섭렵한 것 처럼 보인다. 기발한 구성, 막힘없는 글솜씨 (아마 번역한 분의 자질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지루하기는 커녕 느닷없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내용들은 문득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갸우뚱 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이 견딜 수없는 통증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그의 몸 속에 커다란 상어가 한마리 살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 상어를 몸 밖으로 끄집어 내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써보지만 상어는 쉽게 나갈 생각을 안하다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는 모호한 상황 가운데 그 상어가 마침내 몸 밖으로 퇴출되는 것으로 끝난다. 에밀리 디킨슨이 자주 인용되고 거론되는 것은 그녀의 허무주의적 시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 나라에도 마르탱 파주 같은 기발하고 번뜩이는 작가가 있던가 생각해본다. 이런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 부류로 구분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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