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On seeing and noticing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이쯤 될까? '보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
역시 '동물원에 가기' 편이 책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스위스 태생이고 영국에서 수학했지만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있는 보통의 산문집이다.
무엇이 그를 '보통'이게 만들었을까. 그가 '호퍼적 공간들'이니, '영국적인 외로움' 같은 표현들을 즐기듯이, '보통적 문체'라고 말한다면 어떤 점을 들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람의 심리를 단순히 보지 않고 꿰뚫어 알아차리는 섬세함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
'진정성'이란 제목의 첫 번째 글에서, 사랑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잃고 마는 것이 진정성이라는 그의 말에,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숨에 공감을 하면서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진정성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극악한 거짓말이나 과장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대로 말하고 생각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상대방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상대의 기대에 맞춰 행동하려는 시도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어버리는 것일지도, 최소한 그런 시기를 거치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겪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망도 했던 그런 경험들이, 보통과 같은 작가의 글에서 발견될 때, 나의 성격적 결함이 아니었군 하며 슬그머니, 하지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람은,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는, '독신남'이라는 글을 시작하는 첫마디는 또 어떤가. 버려진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랑이 없는 인간은 팔다리가 반 뿐인 생물과 같다고 말했다는 플라톤 인용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언어는 장황하지 않으면서 다양하다.
그럼 그가 생각하는 잘 쓴 책이란 어떤 책일까.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나 혼자 파악하려 할 때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된다. 더 생생한 느낌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세계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126쪽).
 
   
그렇다면 그러한 묘사능력과 표현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보통씨.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농담의 의의에 대해 단순한 말장난과 구별지어 비판의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오만, 잔혹, 허세 등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을 비판하는 방법이라고.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주는 즐거움 뒤에 남는 여운과 은근한 향기, 보통, 당신의 글이 그러하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