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문단의 신데렐라' 라고들 하는 안나 가발다의 소설로 처음 읽은 작품이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편, 그는 결국 떠나고 두 딸과 남게 된 끌레어는, 그녀와 어린 두 손녀들을 잠시라도 보살펴주고 위로해보려는 시아버지와 며칠을 시골집에서 보내게 된다.

우리는 한참동안 그렇게 있었다. 조용히,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면서

글 중의 그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뜻밖에 시아버지는 아내 아닌 다른 여인을 사랑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내고, 말없고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시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놀란 끌레어는 관심을 가지고 며칠에 걸쳐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시아버지의 독백과 듣는 며느리.
아내는 언제나 가정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 같은 존재였기에 끝까지 저버릴 수 없는 상대였다면, 끝까지 사랑한 상대는 아내가 아닌 바로 그 여인이었다는 고백. 그녀를 만나는 날들의 기쁨으로 이어지던 자신의 삶을 시아버지는 '점선으로 이어진 삶'이라고 표현한다. 직선이 아닌 점선의 삶. 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그 여인과 함께한 시간이었다면 그녀가 없는, 아내와의 시간은 그저 선과 선 사이의 빈 공간에 지나지 않았음을.
사랑이란 무엇이고, 결혼 생활이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책의 시작은 며느리인 끌레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다 읽고 나니 인생을 더 오래산 시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주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아내와 아이를 두고 새로운 사랑을 따라 떠나는 것을 보고 이 아버지의 마음에서 어떤 생각이 일었을까. 아들을 두둔하지도 욕하지도 않고 다만 불쌍한 녀석이라고 읖조리는 아버지는 아마 아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보았을 것이다.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십리 길을 걸어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인생사 모든 게 지나고 보면 한낱 비눗방울이 아니던가.

 서른 몇 살 그녀의 이 독백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우울함을 한 겹 보태주었음에도, 그래도 읽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솔직함과 담담함이 있는 책이다.

아 참, 이 소설의 마지막이 아주 맘에 든다. 바게뜨의 꽁다리를 먹고 싶어하던 딸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고 며느리의 방을 나가면서 방의 가구와 목재들에게 던지는 물음. 그 의미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느끼는 이 소설의 매력의 90퍼센트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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