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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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아침>의 저자 파스칼 키냐르. 나는 그 영화조차도 본적이 없고 그 내용도 모른다. 어떻게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을까. 제목에 끌렸다고 해야할까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라니.
마지막 장을 읽고 그 뒤의 작가 연보까지 찬찬히 다 읽어보고난 지금, 과연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감히 이 책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시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정반대이다.' (84쪽)
'시, 되찾은 단어, 그것은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어떤 이미지 뒤에나 숨어 있게 마련인 전달 불가능한 이미지를 다시 나타나게 하며...'(85쪽)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며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가까스로 찾아낸 단어를 입으로 발음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한 것 인가.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전달 불가능하던 이미지를 세상에 나타나게 하며 그 이미지를 재생하는 것이라고.

'언어에 수없이 형용사가 나타나면, 그것은 언어가 없다는 기호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분만을 드러내는 징후, 언어 이전의 실체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가리키는 징후, 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 즉 격렬한 장면, 즉 현실에 앞선 실재, 즉 교합, 즉 감각 과민증을 지시하는 징후이다.'(88쪽)

언어 이전에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딱히 무어라고 이름지어 부르는 대신 얼마나 여러가지 은유를 통해 나타내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런 은유중의 은유는 바로 책 제목과 같은 제목으로 책 내용중 삽입해 놓은 동화가 아닐까 싶다.
도달 불가능한 '저 세계'. 언어는 그 세계와 우리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연통관과 흡사하다고 한다. 끊임없이 혀끝에서 맴돌지만 정작 혀로 들어가 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 언어를 통해 분출될 때는 아연실색의 시간, 일시 정지된 시간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단계를 카오스에 비유하였다.
글쓰기에 대해 그가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보라.

'글쓰기, 그것은 잃어버린 목소리 듣기이다.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내어 그것을 알아맞힐 시간 갖기이다. 잃어버린 언어 안에서 언어를 탐색하기다. 거짓말 혹은 대체물과 알 수 없는 지시 대상의 불투명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끊임없이 편력하기다.' (109쪽)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자가 후기에서 소개한 바슐라르의 '천천히 옮겨 적는 것 보다 더 좋은 독서는 없다.'는 말을 실천해보고 싶어진다. 또박또박 어딘가에 적어가며 음미해보고 싶어진다.

'나는 글을 쓰는 행위에 의무라는 개념을 부여했다. 침묵의 단어가 없는 탓에 나는 단 하루도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철저히 입을 봉하고 있을 용기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삶의 온기 가까이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 까닭에 어떤 날도 내게는 휴일이 되지 못한다. (...) 글을 쓰는 행위는 아마도 애초에 익사하지 않으려고 매달린 나무토막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고립되기 위한 핑계, 각성과 그로 인한 감시와 타인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는 속임수였을 것이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속이고, 세상 몰래 숨어서 세상 자체를 속이려는 명목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 죽지는 않으면서 세간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목이었을 것이다.' (122쪽)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연보에서 발견하고 나니 더욱 이해가 된다.
'우리는 결함있는 존재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얼마나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가. 날마다 배고픔에 사로잡히는 우리의 포로 상태, 꿈, 동요, 두려움, 거울, 언어, 이런 것들의 망망대해에서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파도처럼 되풀이 되는 것이 우리의 실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욕망을 포기하지도, 나이나 휴식, 겉치레에 불과한 영광에 넘겨주지도, 사회적 지위나 그 따분함, 명예와 그 역할에 넘겨주지도, 여자나 금전에 넘겨주지도 말아야 하며, 집, 가족, 틀에 박힌 사고, 안락함, 대의명분, 평화, 그 어떤 것에도 욕망을 넘겨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욕망은, 삶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인가. 태어나면서 우리가 받은 재산이라곤 생명과 생명에 대한 탐욕이라는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어오던지.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아는 자기 내면의 인성의 지배자가 아니어서 스스로를 뛰어넘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해 착각한다. 자기 정체성이란 자신이 바라볼 수 없는 어느 날 밤의 영원한 대체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언어의 지배자가 아닌 것은 지구가 은하계의 중심이 아닐뿐더러, 혹성들의 지배자, 항성들의 구덩이와 빛의 지배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125쪽)

자꾸 자꾸 읽어본다.
읽을수록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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