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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읽은 미술 관련 책들이, 읽기에 그리 어려운 책들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중 가장 친숙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가장 유머러스한 책이기도 하다.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이었기 때문일까? 미술이 주는 선입견, 즉 무슨 사조인지 알아야 하고 시대를 알아야 하고 무슨 파인지 알아야 하고 등등의 벽을 겁내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책이다. 물론 사조, 시대, 특징 모두 그림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출발점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무심코 어느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은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내 눈을 만족시키기도 하며, 잠들어 있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 내가 잊고 지내던 어떤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과 가까와져 가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저자의 이름. 그녀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순전히 그림이 좋아서 인터넷 사이트에 그림과 관련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누리꾼들의 인기를 불러모으게 되고 책으로까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림, 내 가슴에 턱하니 내려와 걸리는' 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간 이 책의 서문을 읽어보자.
그림을 좋아하기 전, 저는 음악광이었습니다...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무수한 음계의 높낮이에 따라 너무 쉽게 웃고 우는 게 싫더군요.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그 선율에 제 존재가 온통 뒤흔들리는 게 짜증난 거지요. 그림을 보면서부터는 마음을 다스리는 게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 시간들 속에서 조금은 절제되고 유순하게 가라앉은 채 감동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음악에 짜증났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임을 안다. 음악을 들을 때와 다른,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것이 저자의 이 구절을 읽음으로써 확실해졌다. 음악을 들으면서의 흥분 대신, 생각할 여유를 주고,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주며, 자신과 대화의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이 평범한 우리에게 주는 것들 아닐런지.
시대 사조별로 그림을 배열해서 설명하는 형식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에 들어 온 그림들을, 몇 개 씩 글의 성격에 맞게 묶어 그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기분으로 읽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글쓰기 스타일이다. 그림은 '우아떠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술이라는 그녀의 말 그대로이다.
그림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맨 먼저 선물로 건네주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