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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안느 실비 슈프렌거 지음, 김예령 옮김 / 열림원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들어보는 작가이다. 사진 속에서 눈을 치켜 뜨고 바라보는 모습의 저자. 표지 그림은 또 어떤가. 표지 전체에 꽉 차게 그려진 한 여자의 얼굴.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는 한쪽 눈은 초록색, 다른 한쪽은 갈색이다. 입가에는 설탕 덩어리가 여기 저기 묻어 있고.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것은 어쩌면 이 표지 그림이 잡아 당기는 어떤 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잡아당기는 힘 때문이라기 보다는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해야하나.
이 책을 들추면 과연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 것인가. 심상치 않은 스토리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으로 읽기 시작한 소설.
자해적이고 잔혹극 같다는 책의 소갯글대로,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는 내용이 펼쳐진다. 마치 베티 블루 37.2 영화를 볼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우울함에 시달리다 못해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먹을 것을 온통 먹어치우고 괴로움에 허덕거리는 주인공의 일상을 읽어가다가 나중엔 잔혹하다기보다 슬퍼졌다. 그녀가 가진 슬픔의 통이 다 채워지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 그것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데서 오는 우울함이 그녀의 생 전체를 잠식해들어가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우울을 잠시나마 잊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주인공의 경우엔 바로 폭식증이었던 것. 그것뿐이 아니라, 거리로 나가 자기를 원하는 남자를 기다리고, 그들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면서도 지극히 사랑하는 프레데릭에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은 또 어떤가. 이런 생이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선정적이라고 해도 할말 없고, 잔혹극 이라 해도 할말 없을 것 같은 이 소설이 저자의 첫 소설이라는데, 2007년 펴낸 두번째 소설은 이를 능가한다고 하니, 저자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묻고 싶어진다. 이 역시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설이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들에게 던지는 또하나의 충격 요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말 것인가.
우리의 삶은 도대체 얼마나 극단까지 치닫을 수 있는 것일까를 보여주는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한 사람의 슬픔과 외로움, 우울이 가진 힘이 몰고 갈수 있는 경지는 어디까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자, 이것 보라고.
매끄러운 번역 덕에 덜 불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