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서라벌, 즉 신라의 옛이름이다.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는 몇몇 신라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옛 신라의 생활상을 보여주고자 한 연작 소설이다.
법흥왕의 부인이자 지증왕의 모친 되는 '연제태후'의 이야기가 그 첫번째. 키가 칠척 오촌이나 된다고 기록에 전해지는데. 과장이 섞였음직한 이 큰 체구는 신라 성골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사실, 첫번 이야기부터 당황스럽다. 이차돈의 순교가 소개되는 이야기라고는 하나, 정작 이차돈이 중국에서 들어온 비토속적 종교, 즉 불교를 신라에 전파하고자 순교를 하게 되는 그 장면보다 더 읽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신라 사람들의 그 적나라한 성(性)문화를 보여주는 부분들이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황제와 황후가 제단에 올라가 교합제를 드린다니. 그것도 신하들과 태자까지도 지켜보는 가운데서 말이다. 감히 요즘과 비교가 안되는 사회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화랑도의 이야기를 그린 두번째 '준랑의 혼인'에는 동성애적인 묘사도 서슴치 않는다. 혼사를 앞둔 어린 화랑 준랑과 이미 혼인을 하였고 나이가 지긋한 선배 화랑격인 영랑 사이의, 선배와 후배로서의 존경과 보살핌 차원을 넘어선 애정 행각 (이라고 해야하나?), 혼인날을 하루 앞두고 신부측 친구들끼리 나누는 술과 노골적인 성 묘사가 어우러진 지금의 파티 장면을 글로 읽으며 상상하기란 참 낯 설수 밖에 없었다. 글 중의 노래 가사에 '꽃사내'란 말이 나온다. 요즘말 '꽃미남'은 원조가 신라시대였나? 노래 가사중 '지궁지궁 하여이다, 애공애공 하여이다' 앞 뒷 가사로 미루어 뜻이 짐작이 되는 말.
선덕여왕을 남몰래 사모하여 한번이라도 가까이서 뵙는게 소원이던 미천한 신분의 지귀, 그리고 삼국을 통일한 태종 무열왕의 말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세번째 이야기 '변신'은 무열왕의 차남 김 인문이 작중 화자이다. 과거의 위용과 업적이 그 사람의 말년의 모습과 꼭 일치하란 법이 없구나. 선덕여왕이란 인물은 그리도 비범한 인물이었던가 새삼 관심이 생기기도 한다. 신라 온 국민의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이유가 아름다워서, 신통해서, 장대해서, 무서워서, 그 어떤 이유로도 딱 들어맞지 않았다는 말은 이 모든 것이 이유가 되기도 했다는 말 아닌가?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그녀는 비천한 용모와 신분의 지귀의 뜻을 내치지 아니하고 위로해주는 선처를 베풀어 불귀신이 된 지귀의 영혼을 달래준다.
'혜성가'는 옛부터 상서롭지 못한 별로 알려진 혜성의 출현과 왜군의 침입을 잠재우려 실처랑, 거열랑, 보동랑의 세 화랑이 누이 노리혜와 더불어 신궁을 방문하여 신궁 제주의 제안에 따라 하늘에 제를 올리는데, 이것이 또 교합제라. 만인이 지켜보며 예를 올리는 가운데 제단 위에서 보동랑과 노리혜 사이의 교합제가 거행된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이런 교합제의 풍습을 들어 신라를 상스러운 국가라 손가락질했다는데, 실제로 글 중에 신라 토속 신앙과 중국에서 갓 들어온 불교와의 대립이 여기 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옛부터 우리 민족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사상이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위기감과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나보다.
삼국 통일의 일등 공신 김유신과 뜻을 이루지 못한 천관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한 '천관사'의 설립 과정을 그린 다섯번째 이야기 '천관사'는 원효대사의 파격적인 설교 장면이 나오고, 일생의 어떤 큰 일을 경험하면서 한 인간의 성격이 얼마나 파격적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위의 제목을 '선데이 서라벌'로 붙인 것은, 나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작가가 후기에서 그렇게 부른 것을 인용했을 따름이다. 신라 사람들의 토속성이란, 그리고 주체성이란 이렇게 표현 되는 것이었던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작가는 신라 사람들을 희화화 하거나 과장하려는 의도 없이 다큐멘타리를 제작하는 심정으로 소설화 헀다고 한다.
지금 우리들의 삶보다 훨씬 화끈하고 흐드러지고 숨김없었던 신라 사람들. 그것이 인간 본성이었다면야.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지금의 우리들은 얼마나 인간 본성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성인용' 우리의 고전 책 한권을 읽은 느낌인데, 도대체 이 (젊은)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능청스러울만치 자연스럽게 우리 옛 언어를 이리 엮고 저리 엮어 소설로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여전히 나의 관심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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