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 윌리엄 레이몽은 프랑스의 유명 기자이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이미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비만'을 일종의 유행병이라고 판단, 그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비만 문제를 파헤쳐 보고 그 심각성을 알리고자 이 책의 저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갈수록 그가 발견한 사실은 비만의 심각성 자체보다, 그 뒤에 감춰진 복합적인 사회 현상임이 드러나, 비만은 이제 개인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생활 습관병이 아니라, 썩어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정치, 상업 주의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드러나는 비만 인구의 증가는 빙산의 일각이었고, 감춰진 빙산은 따로 있는 것이었다.

비만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탓인지, 몇 년전에 비해 1인당 섭취하는 열량은 크게 늘지 않았음에도 비만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만을 경고하는 한 편에서 여전히 눈 감고 비만을 부추키는 사회가 있다. 비만과 관련된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하여, 비만 관련 의료 사업 뿐 아니라, 각종 미용 성형, 비만자를 위한 새로운 잡화 개발과 판매 등, 미국에서 매년 비만 관련 질환에 사용되는 돈만 해도 450억달러라고 한다. 물론 이 돈은 국민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이다. 총기 사고로 죽는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매년 비만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죽어감에도 이 문제에 관해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한 국가의 속셈은 무엇인가. 비만과 관련된 사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제약회사들이 선거때마다 정치인들에게 펑펑 쏟아붓는 기부금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제약회사의 가장 큰 재능은 '연구개발'이 아니라 '마케팅'임을.

실제로 저자는 미국을 '비만을 부추키는 사회' 라고 이름 붙이고, 미국의 식품산업을 낱낱이 파헤쳐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현재 미국의 식품 산업은 거대기업과 정치계가 좇는 어마어마한 돈벌이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음식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고 간파하게 된 근거는 무엇인가.
1970년대, 미국의 곡물 시장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닉슨 행정부는 농민들의 불만을 가라 앉히기 위해 소련과의 비밀 협정으로 막대한 양의 밀을 수출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번엔 미국의 밀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고, 따라서 미국의 식료품 가격과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미국내 식품 생산을 소수 거대 농업 위주로 중앙 집권화 한 것이다. 이것은 소수 거대 식품 회사에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집중적으로 지급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이로써 미극의 식료품 시장은 훨씬 더 수월하게 국가의 조절하에 움직이게 되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식품가는 당초 목적대로 저렴해졌고, 남아도는 수백만의 저렴한 곡물들을 처치할 필요성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이때  발맞춰 개발된 것이 우리가 액상과당이라고 부르는 HFCS (High fructose corn syrup). 설탕을 만들려면 사탕수수를 수입해와야 하는데 반해, 액상과당은 당시 미국에 남아도는 옥수수를 재료로, 옥수수 전분을 가수분해하여 포도당 시럽을 얻어내는 방법으로서, 설탕보다 보존 기간이 길고 혼합하기 쉬우며 생산비가 적게 들어, 공산품으로써 만들어지는 식품에 제격이었고 남아도는 옥수수 처치에도 그만이었다. 이 액상과당은 햄버거, 잼, 과일주스, 케첩, 통조림, 과자, 냉동식품, 비타민에 이르기까지 각종 식료품 뿐 아니라, 1978년에는 코카콜라를 위시해서 각종 탄산음료의 단맛을 내는데 쓰이게 된다. 이제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단맛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빅 사이즈의 콜라, 무한 리필, 하나 사면 하나 더 주기 등, 마구 주어지는 음식물. 사람들의 건강은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설탕과 달리 액상과당은 비슷한 단맛을 내지만, 체내에서 설탕이 하는 것 처럼 신경전달체계를 활성화시키지 않는다. 인슐린 분비와 렙틴의 생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양의 단맛이 들어와도 정상적인 조절 작용이 체내에서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체중은 자꾸 불어날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은 더욱 단 맛에 길들여지게 된다.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식품, 내 아이가 먹는 식품의 뒷면의 성분란을 살펴 보면, 어렵지 않게 액상과당이란 단어를 발견할 수 있을테니.

코카콜라 회사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초등학교는 교내 여기 저기에 콜라 자판기를 설치하고 있고, 미국의 유수한 의과대학의 한 연구실에서는 '신경마케팅' 이라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기업에서 제공된 연구비를 가지고 소비자의 구매욕에 영향을 주는 뇌의 메커니즘을 밝히기 한 일을 하는 것. 자원자들의 뇌에 일정한 자극을 준 다음 어떤 반응이 오는지 MRI장치로 관찰하는 실험이 이루어진다. 그 실험 결과가 후에 어떻게 이용될 지. 확실한 것은 어떻게서든지 '이용'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과 관련한 목적으로.

대체식품이 개발됨에 따라 식료품값은 내려가고, 저렴해진 사료값과 육류 소비의 증가, 끊임없이 우유를 생산하면서 병에는 덜 걸리는 유전자변형 소의 개발 등으로 지구상에 넘쳐 나는 가축과 가축의 배설물을 비롯한 오물들은 다시 인간의 땅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오염시킨다. 호르몬제를 1회 주입하는데 드는 가격은 1달러를 겨우 넘는 반면, 이렇게 함으로써 추가적으로 얻는 수입은 30~40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사람의 '입'이 아니라, 공장의 편의를 위해, 수익과 편리성을 위해 개발된 트랜스 지방의 문제하며, 도대체 지금 우리가 살기 위해 먹는 음식들이 과연 살기 위해 먹는 것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수익이라는 제단 위에 우리의 건강은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막을 수 있는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불러 일으킨 이 흐름을. 이제 우리는 매일 먹는 세끼 식사를 투표하듯 선택해야 하는 시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음식들은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시대는 가고, 환경과, 건강, 윤리를 생각해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구입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나마 이런 인식이 널리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사고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좋겠다.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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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2008-08-0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요 나인님.. 그래서 오래전부터 '두레생협'이라는 곳을 이용하는데요. 여기물건은 소비자 각자가 조합원이 되어서 생산자들과 직접 연계망을 맺어 샌산과 판매를 공동 관리 하는 곳이랍니다.
당연히 우리농산물이고 친환경제품들을 판매하고 있구요.
매년 소비자들이자 조합원들이 시골 각각의 생산지들을 찾아가요.. 어떻게 생산되고 배달되어지는지를 소비자가 직접 관리해가는 것이죠.

먹거리에 대한 생각..그건 생명과 관련이 있는 것인데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러가지 이유러 갈길이 먼게 사실이예요...
제작년부터인가요.. 두레생협에서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 반대를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써주신바대로 식품이라는 것에까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들어간 결과들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또한 인간의 몫이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음식재료들과 기타의 공산품을 구입하는데 사실 제가 몸도 별로 좋지 않았었는데 많이 건강해진걸 보면 여기 덕이 큰것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음식...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정말 좋은 음식들을 장기적으로 섭취해보니까 더욱 실감이 나더라구요..
우리가 할일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다린군의 세대.. 제 아이의 세대를 위해서라두요

hnine 2008-08-05 15:59   좋아요 0 | URL
두레 생협, 저도 알지요. 제 아이 경우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얼마나 심했던지, 그래서 제가 더욱 먹거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이 책은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우리들 모르게 이루어지는 정치적인 뒷거래, 물질 만능주의 등에 의해 우리의 먹거리가 농락당하고 있음을,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