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식인마을 25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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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열로 대학에 갓 입학한 남동생의 책꽂이에서 어느 날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라는 책을 보았다. "이런 책도 읽냐?" 했더니 누나는 그 책 읽었냐고 한다. 안 읽었다는 나의 대답에 동생은 어떻게 과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이 책도 안 읽어볼수 있냐면서 그 책에 소개된 '패러다임'이란 것에 대해 몇 마디 했던 것을 기억한다. 며칠 전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면서 그 때 생각이 잠깐 났었다.

과학을 공부한다, 과학적이다, 등의 말에 포함된 '과학'이라는 말. '문학'이나 '예술'이라고 말 할 때와 어딘가 다른 느낌. 그 정체는 무엇인가? '과학'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그 권위와 힘, 최고의 지식 활동을 연상시키는 그 특별한 것은 무엇인가? 단순한 질문인 것 같지만, 과학철학이란 분야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과학철학자들이 벌인 논쟁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데 주로 미국의 토마스쿤과 영국의 칼 포퍼의 사상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학이 다른 분야와 구별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검증될수 있거나 (verifiable), 반증될 수 있어야(falsifiable) 한다. 반증가능성은 포퍼의 반증주의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서, 귀납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그당시 주류 사상이던 비트겐슈타인의 주장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뒤이어 미국의 토마스 쿤은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으로서 '패러다임 (Paradigm)' 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과학이란 과학자 사회가 하나의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를 받는 가운데 과학자들이 벌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공통 패러다임이 깨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현상을 과학혁명이라고 보았다. 이 책에서, 과학철학의 양대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지지, 혹은 반박, 그리고 그 근거들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불안하지 않은 지식 수준과 글 쓰는 능력 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책의 제목부터가 영화 '메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를 생각하며 붙인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저자는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가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참 잘 쓰여진 책, 공 들여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정작 과학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좀처럼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좀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할 뿐.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조류학이 새에게 유용한 만큼만 과학철학은 과학자에게 유용하다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문학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실제로 과학자들이 어떠한 종류의 지적 활동을 하는지를 메타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철학자들이라고 저자는 비유하여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의 자연계열 학생들에게는 커리큘럼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과학철학.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을 세련되게 할 수 있도록 생각을 훈련시키는 학문이라는 저자의 답변도 판에 박힌 것 같지 않고 참신한 나름 대로의 풀이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이력을 몇 번씩 들춰보게 되었다. 탄탄한 지식과 그에 부합하는 해설과 구성 능력, 이 책을 나의 장서 중 하나로 포함시키기를 주저하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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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Photo 2008-08-03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칼 포퍼, 토마스 쿤, 비트겐슈타인,.....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멋진 이름들.....
예전에(한 20여 년 전에), 이공 계열 학문들("과학")과 인문사회 계열 학문들 사이에 거의 전혀 "교류 없어 왔음"을 발견(?)하고, 개탄하고(자기가 뭐라고 개탄까지... 헐헐...), 한심해하던 기억이 스물스물.....
그러던 중 "과학철학"이라는 생소한 작업(?)이 어디선가 소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기도.....
이젠 모두 참 오래된, 빛바랜 이야기들.....


hnine 2008-08-03 08:11   좋아요 0 | URL
리뷰에 등장하시는 분이시로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