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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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분야로서 보통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열거하지만, 생물학은 자연 과학의 다른 분야와 구별되는 특이한 점이 있다. 1 더하기 1 이 반드시 2 가 되지 않는다는 점. 경우에 따라 3 이 될 수도 있고 4 가, 또는 5 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은 1 더하기 1 하면 무엇이 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 2 가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3 이 되는지, 이렇게 되도록 조절하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 각각의 부분에 대해 완벽하게 알아내었다고 해서, 그 부분들이 모여 이룬 전체가 완벽하게 설명되어지지 않는다는 점, 생물학을 이야기하라면 고작 이렇게 밖에 운을 떼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 책이 안겨주는 놀라움과 감동은 각별하다.
생물이 무생물과 구별되는 특성은 무엇인가. 보통 일반생물학을 가르칠 때 첫 시간에 다뤄지는 내용인데, 가르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저 기계적으로 첫째, 둘째, 번호 붙여가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여져 전달되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이 문제를 진진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종 3D직종의 하나라고도 하고, 이 책에도 표현되었듯이 실험실의 노예라고 자칭하면서도 밤낮없이 실험에 매달리는 이유는 어떤 주제에 대한 '호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DNA의 구조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이 이중나선 구조가 갖는 엄청난 의미를 알고 생명 현상에의 경외감을 가져볼 수 있어야 한다. 
1952년, DNA구조가 밝혀져 발표되기까지 드러난 영웅,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 생물학은 철저히 물리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을거라고 본 슈뢰딩거 이야기, 생명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한 쉰하이머의 '동적 평형' 개념에 의해 새로운 생명관이 탄생하는 이야기, 제한된 공간을 왔다갔다 하며, 실험에 이용되는 실험용 쥐와 다름없는 실험자 자신의 생활 등, 딱딱해지기 쉬운 내용들을 사사로운 이야기와 적절히 섞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하였다. 특히 경탄해 마지 않았던 것은, 저자의 뛰어난 비유력이다. 세포막과 막 단백질, 새로운 단백질 등을 바닷가의 모래성과 풍선, 풍선을 쥐고 있는 아이들 등으로 비유한 것이나, 세포를 3차원 직소 퍼즐에 비유하여 세포생물학은 위상기하학이라고 표현한 것등, 한 분야에서 오랜 경륜을 쌓은 사람의 통찰력과 지식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면서도, 대단한 발견이나 발명은 순간적인 직관이나 번뜩임의 산물이 아니라 그것에서 비롯되긴 하지만 결국엔 끝까지 실험대 옆을 지켜내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책의 말미에, 자신이 오랜 기간 연구해오던 단백질 유전자의 녹아웃 마우스가 그동안의 기대,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적인 생명현상을 보이는 것을 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생물체와 기계가 다른점, 즉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를 설명한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계의 조립 과정과 생명 현상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생물의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며, 한번 접히고 나면 다시 펼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생물임을. 결론적으로,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 이것이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자 그가 알려주는 메시지 이다.

최근, 사람들의 가치관과 판단력을 능가하여 앞서 발달해가고 있는 생명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저자의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개인적으로, 별 다섯개를 주고도 남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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