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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스케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원제는 London observed : Stories and sketches.
글을 쓴 도리스 레싱 (Doris Lessing)은 영국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지만 지금의 이란 땅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성장했다. 일찌기 학교를 그만 두고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열다섯에 집을 떠나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한다. 두 번의 이혼뒤 영국 런던으로 이주. <풀잎은 노래한다>를 시작으로 작품을 출간하기 시작, 영국 문학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황금노트북>같은 장편 중의 장편에 들어가기에 앞서, 짧은 글 모음집인 이 책에 먼저 손이 갔다. 노벨문학상 작가라는 선입견은 안그래도 읽기 전의 부담을 더 실어다주는 상황에 세권짜리 <황금노트북>은 미리 버거웠다고나 할까.
제목처럼 가벼운 소묘형식의 글 열 여덟편이 실려져 있는 이 책은 형식은 가벼울지 모르나, 작가의 색깔을 여지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런던에 사는 여러 층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통해 단지 그들이 아니라 인간 삶의 여러 가지 모습을 독자들에게 내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관적인 장황한 묘사를 피하면서도 어떤 구절에서는 단순한 하나의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작가의 심중이 무엇이었을까 집중하며 읽게 만들었다. 각 스토리들이 시작같지 않은 시작, 결말같지 않은 결말로 맺는 것은 정말 이 작가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사회복지부>라는 단편은 정말 한 컷 같은 이야기이나 그 한 컷을 보여주며 전달되는 이면의 많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역량이랄 밖에.
<장미밭에서>라는 단편의 한 구절.
마이러는 삶의 절반 동안 셜리가 마치 지뢰밭인 듯이, 그리고 자신은 그곳을 가로질러 달리는 듯이 행동해 왔다고 느꼈다. (175쪽)
마이러와 셜리는 모녀 관계이다. 지뢰밭, 그리고 그 지뢰밭을 가로질러 달리는 삶으로 묘사되어 있는 관계. 사람사이의 관계, 편견을 넘어서, 그 이상의 관계.
이 세상은 너무나 각양각색이라서 궁극적으로는 무색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도리스 레싱 입문이다. 서둘러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을 생각은 없다. 천천히, 기회가 될 때마다 읽어가야지. 웬지 또 나를 움직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