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과 관련된 가벼운 사유의 흐름으로 역어진 책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나도 모르게 저자가 잘 나가는 여성 라디오 PD라는 것에서 선입관을 가졌나. 정말 나도 모르게 말이다. 그런데 읽어보니, 소개된 책들을 봐도 그렇고 저자의 그 사유의 흐름이라는 것이 누구든지 쉽게 따라갈만 한 수준의 것이 아니더라는 것.
책 속에서 수백 종류의 인생을 살아본다는 것은 이 정도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삶 자체가 마치 책 속에서 영위되는 듯한 느낌. 책으로 묻고 책으로 답하고, 책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는 듯한 삶의 방식.
그녀가 책 만큼 좋아하는 '여행' 역시 하나의 삶이 아닌 수백 개의 인생을 꿈꾸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니, 소원대로 여행과 관련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녀의 독서 편력은 문학적인 책 읽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시사다큐 전문 프로듀서로서의 경력때문일까. 사회 문제에 대해서 날카롭게 뻗고 있는 촉수가 여기 저기서 드러난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서 '사람들은 왜 전쟁의 참사를 기록한 끔찍한 사진을 보는가?'라고 던진 질문을 소개하며,
오로지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 두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심하게 되었다. 뭔가 행동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라는 말을 하는 관계를 늘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사회에서 할 일이다. (81쪽)
라고 말하고 있다. 한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은 구절.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키려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그녀는 그 반대로 대답한다. 책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이유는, 책은 고독 속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연결하고 대면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 때문이라고.
그녀가 이 책에서 소개하거나 언급한 여러 권의 책들 중 따라서 읽어봐야 겠다고 메모해 놓은 책은 한 권도 없다. 어쩌면 한 권도. 리뷰 제목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붙인 이유가 될까.
마지막으로 제대로 멋진 인간을 이렇게 표현해 놓은 것이 재미있어서 옮겨 본다.
'시니컬한 줄 알았더니 뜨거운, 안 할 줄로 알았는데 하는, 관심 없는 줄 알았지만 관심 있는, 쿨한 척하지만 찐득찐득한, 무정한 줄 알았더니 껴안아주는, 다른 줄 알았는데 닮은, 혼자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어주는,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호통지면서도 존중하고, 경멸하면서도 끌어안고...' (225쪽)

아, 이 책 읽고 따라해보고 싶은 것은 있다. 무더운 여름 밤에 스메타나의 <몰다우> 들어보기, 52쪽에 소개된,  지명 이름을 따라서ㄱ,ㄴ,ㄷ 순서로 내 인생의 이야기를 풀어보기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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