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 -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한 스물네 편의 사랑 이야기
김용택.정호승.도종환.안도현 외 지음, 하정민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마음에 그물 쳤지만
그 그물 안에 내가 걸렸다

사랑은 빼앗기기
시들기
투망 속에 갇히기

- 공 광규 <사랑> 중에서 -

시를 쓰는 스물 네사람의 사랑 경험담이다.
나이를 먹어도 사랑은 여전히 지나칠 수 없는 주제.
후루룩 펼쳐보다 눈에 띈 시들이 내 마음을 붙든다.

당신 앞에서
비틀거리기 싫어서
넘어졌었죠.
넘어진 게 어이없어서
쫘악 뻗었죠.
당신의 시선의 쇳물
쏟아졌어요.
나는 로봇처럼
발딱 일어났어요.
강철 얼굴을 천천히
당신께 돌렸어요.
내 구두를 미끄러뜨린 게
무어겠어요?

- 황 인숙 <데이트> -

이런 저런 사랑의 감정, 표현하는 방식, 그래서 달라진 이후의 삶.
정 호승 시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누었다는 연상의 누나와의 첫키스 얘기를 읽으면서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인용되어도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눈물 글썽이며 썼을 공 광규 시인의 얘기는 사랑이 '슬픔'과 어떻게 통하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서점에서 골라든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빼앗아 도로 진열대 위에 올려 놓으며 자기도 가지고 있는 책이라며, 한 집에 같은 책을 두 권씩이나 둘 필요 없잖냐는 프로포즈는 어떤가.

장 석주 시인의 <당신에게>는, 상대방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쓴 글인데,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깨고, 혼자 술 마시는 '일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표현을 자꾸 읽어 보았다. 일인분의 비밀과 일인분의 침묵으로 살찌워지는 사유. 어느 해 여름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유성우의 기억을 일깨우며,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나는 왜 이런 편지를 쓸 수 없었을까.

사랑의 무담보성을 인용하며 오히려 마음 가벼워지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이 전해진다. 사랑이 예고 없이 찾아 오듯이, 저절로 끝날수도 있다는 것, 이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비극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적인 한 단면이라는 말은 사랑의 '고수'로부터 들을 수 있는 팁이 아닐런지.
세클라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은 사랑에 실패해도 이내 다시 일어나서 또 다른 사랑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끝없이 반문하면서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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