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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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쉽게 말하기 어려운 작가로 생각되는 여자 소설가 중의 한사람.
그야말로 인생의 이런 저런 골목을 구비구비 돌아오며, 마흔 다섯 그녀의 가슴에 남은 것은 인생에 대한 너그러움, 포용력, 따뜻한 감성일까, 아니면 차갑고 냉철한 현실에 대한 더욱 철저한 자각일까.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내 흔들리는 초상을 본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들과 나는 지난 몇년 동안도 늘 생의 '변방'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는 확실히 화려한 정원에서 보호받고 주목받는 꽃과는 인연이 먼 사람임이 분명하다. 나는 내 글 속의 사람들이 비록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아무렇게나 대접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다만 그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람 부는 길가에서나마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하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작고 고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그들 옆 한귀퉁이에 사는 작가인 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기울이며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들처럼 나 또한 작고 고운 노래 한번 부를 용기를 내지 않을까...'(작가의 말 중에서)'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저리도 절절한 애정을 담고 있구나.
최근에 각 문학지에 실린 열두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맛있는 곶감을 하나씩 빼 먹듯이, 한편 한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면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있는 책.
'꽃진 자리'에서는 바로 이웃집 여인네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중년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한 풍경을 보는 듯했고, '영희는 언제 우는가'에서는 올망졸망 어린 삼남매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의 장례식이 끝날 때 까지 눈물을 흘릴 수 없던 여자의 얘기. 배고프거나 아플 때 울어제끼는 아이의 울음이 아닌, 이런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인자서 우는가비. 그려, 울어라, 울어. 하먼, 밥 묵고 살라먼 울어야제. 울어야 밥맛 나고 밥 묵어야 심이 나제. 별것이나 있간디...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목심줄이여...(56쪽)' 그러고보면 어린 아기의 울음과 다를 바 없구나. 생존의 울음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의 좌절과 희망에 관한 얘기인 '도넛과 토마토', 비에 떠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며 목노아 외치는 절규 '아무도 모르는 가을'. 이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른 종류의 가을이 있음을 알게 해준 이야기이다. 단풍 구경가는 인파와는 다른 종류의 가을을 맞는 사람들, "별도 우라지게 많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삶의 한 대목을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이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리는데 노래를 부르며 걷는 '명랑한 밤길', 쏟아지는 비를 피할 길 없어 그대로 맞으며 그치기를, 언젠가 그치기를 바라며 사는 듯한 사람, 집을 나간 아이,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술을 받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둔 무능력하고 '별볼일 없는' 남자의 얘기 '빗속에서', 인간은 사랑 없이 살수가 없나 '언덕 너머 눈구름', 아내 죽고 자식들 떠난 빈집에서 달 보고 울고 있을 친정 아버지를 생각하는 글 '비오는 달밤', 미혼모와 입양의 주제는 늘 슬프면서 화가 난다, '79년의 아이', '지독한 우정'은 바로 모녀의 사이를 말한 것이고, 갱년기 증세를 겪고 있는 이혼녀 이야기 '폐경전야', 피폐한 상황에서도 상한 것 같은 딸기로 아이에게 잼을 만들어 먹일까 말까를 고민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별이 총총한 언덕'
이 책에서 가장 낭만적인 구절을 고르라면 여기를 들겠다. '나는 나의 스물한 살 봄밤을 그와 함께 먼먼 나라, 그가 없으면 닿을 수 없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만 같았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낯설고 아득한 나라를. 그가 있어야만 닿을 수 있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그래서 슬펐다. 아름답고 슬프고 쓰라린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번에는 낯익고 낯익어서 슬픈 풍경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114쪽 '명랑한 밤길'중에서) 연애의 감정을 이처럼 아득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을 할수 있을까.
삶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뉘어져 있다면,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 동안은 그 어두운 편에 들어갔다 온 기분이다. 하지만, 어두운 편에 있다가 나옴으로써 삶을 가볍지 않게, 더욱 진지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그런 느낌. 함부로 좌절할 일도 아니며, 쉽게 기뻐 춤 출 일도 아니라고 가르치는 듯한. 지금 딱 그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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