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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2일자 경향신문에 나희덕 시인이 소개한 앤 카슨의 시 <신의 일>을 읽고서 든 생각.
신의 일
부엌에 드는 달빛은 신의 표식이다.
당신 자신의 배꼽으로부터 당신을 뽑아내는
검은 흡입관 같은 슬픔, 또 불교도들이
'무심 (無心)'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의 표식이다.
인간의 대화와 나란히 이어지는,
채찍질 같은 막다른 골목들은 신의 표식이다.
신 스스로의 평온함은 신의 표식이다.
감자나 돈의 놀랍도록 차가운 냄새.
침묵의 견고한 조각들,
이 다양한 표식들로부터 당신은
할 일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슬픔은 걷어버려라, 그것은 할 일을 가리고 있는 덮개다.
신의 일 (God's Work)은 성스러운 공간에서, 특별한 사건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부엌에 비치는 달빛 (Moonlight in the kitchen) 에서도 초월적인 의미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 그 경지.
신과 인간의 사이가 갑자기 좁혀지는 것도 같고, 신의 일에 대해 우리 인간이 할 일을 대조하여 보여주는 것도 같다.
슬픔으로 가리고 덮어버린 우리의 할 일이란.
슬픔에 압도되지 않고, 슬픔에서 끝내지 않고 우리는 계속 존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