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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 아직 끝나지 않은 이론
브라이언 이노.베테 아드리안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평점 :
나에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는 대학 입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보다 훨씬 먼저, 초등학교 5학년때 왔다. 초등학교 5학년때 예능계 학생들을 위한 예원 학교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단순히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예원 학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말을 들으니 나도 준비해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엄마께서 하시는 말씀, '취미로만 하거라.' 그 말씀에 바로 주저앉음. 그러고도 마음 속에 남는 미련을 지우기 위해 나 자신을 설득시킨답시고 스스로에게 주입시킨 생각이, '음악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일이나 할 뿐,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였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일은 아니며, 여유가 있을 때 즐기기 위한 것이다, (것이어야 한다 )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억지로) 한 것 같다.
돌아보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도 못했지만, 여유있을때나 하는 잉여 활동으로 생각했던 음악을 떠나서 보낸 시간은 없었던 듯 하다. 지금까지 계속 듣고, 치고, 배우고. 여유 있을때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외롭고 힘들고 팍팍하던 시기를 보낼때 더욱 가까이 하며 그 시기를 넘겼던 것 같다.
과연 예술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있으면 좋고 없어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없는, 잉여 행위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가?
물론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보면 대신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예술은 인간이 삶을 '견디게' 해 준다고. 의식주에 직접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삶. 포기하고 싶고 그 자리에 멈추고만 싶을 때, 계속 go on 할 수 있도록 위안을 주고 감동을 주고 보이지 않는 힘을 주는 것이 예술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이 책 제목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만 되었어도 읽을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What is the art (예술의 본질) 가 아니고 What art does 즉 예술이 무엇을 하는가, '예술의 기능'에 대한 것이다. 뭔가 더 읽기 쉬운 것 같았다.
"우리에게, 삶에게, 세계에게, 예술의 쓸모란 무엇인가"
이 책의 두명의 공동 저자중 한 사람인 Brian Eno는 영국 태생의 유명한 음악인으로 ambient music* 이라는 음악 장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이다. 스스로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콜드 플레이, U2,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원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
(*ambient music: 공간의 분위기 (atmosphere)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음악. 멜로디나 리듬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을 통해 듣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는 예술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가. 예술이 왜 필요하다고 했는가.
1, 예술은 감정이 생겨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예술의 본질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감정을 갖는다는 것. 감정 없는 상태로 생명의 상태만 유지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살아있는 동안 우리에겐 끊임없이 감정이 생겨난다.
감정은 생각이나 표현보다 먼저 생겨난다.
감정은 속도가 더 빠르다. 재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처했을떄 우리는 주로 속도가 빠른 감정에 의존해서 해결책을 찾는다.
감정은 모호하고 규정하기 힘들며 측정하기는 아예 불가능하고 계속 변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감정에 기초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들이 존재하긴 하다. 추론과 데이터에 기초한 결정들이다. 보통 그런 것들을모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그런 식으로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상황,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욕망, 우리의 가치관 등이 모두 한데 엉켜있다. 그래서 우리는 직감, 추측, 본능에 의존해야 한다. (29~33쪽)
예술은 사람의 그런 감정을 풀어놓는 장이고, 예술가들은 감정을 파는 상인들이다. 예술 작품은 감정을 촉발하도록 만들어졌다.
2. 예술은 탈출이 가능하다.
한 번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다 해 볼 수는 없고 시간이 허락한다 해도 결과가 두려워 직접 경험해보기 망설여지는 것들도 있는 법인데, 예술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3. 예술의 사회적 기능
예술은 단순한 개인의 표현이 아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에술은 우리가 꿈을 나누는 곳이다. 예술은 공동체를 완성한다.
4.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위대한 기술. 예술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생각해 내고 현재엔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시험해볼 수 있다. 현실 도피가 아닌 미래에 대한 실험이다.
어떤 문제에 닥쳤을때 솔루션만 찾으려 하지 말고 상상을 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여정으로 이끌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예술은 어떤 특정인만의 영역이 아니며 우린 이미 생활 속에서 예술 행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은 보편적인 인간 활동이라는 것이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해야하는 일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일들 외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수천 가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옷에 수를 놓고, 음식에 장식을 하고, 시를 읽고, 악기를 연주하며 몸에 장식을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흥얼거리고, 글을 쓴다. 왜? 이런 활동을 하면서 얻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즐겁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 외에도 우리는 이런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서 예술은 먹고 사는 일과 상관 없는 활동이어야 한다.
양정무 교수의 책 <미술 이야기 1> 에 보면 원시인들은 왜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토기에 빗살 무늬를 새겨 넣었을까 하는 내용이 나온다, 토기에 그려진 무늬는 토기의 본래 기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미술은 두 발로 걷고 사냥을 하고 도구를 만드는 것 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감정을 탐험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미래를 상상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예술이 밥 먹여 주나?
예술이 밥이 될 수는 없지만, 밥을 먹는 수십 가지 방법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