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 김경미 시집, 2023년 민음사 -
김경미 시인이 지금까지 낸 시집의 제목을 살펴보자.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고통을 달래는 순서>, <밤의 입국심사>, <카프카식 이별> 거기에 이 시집의 제목은 그 극강에 있다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사람의 감성을 툭 하고 건드리는 제목들이다. 도대체 이런 제목을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는지. 소설을 읽으며 이런 스토리는 어떻게 머리 속에서 짜여질 수 있는지 감탄하는 것과 또다른 감탄이다.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정서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감각적으로 함축한 문구.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취급이라면>이란 시에 시집의 제목과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소포는 오지 않고
-시 <취급이라면> 중 일부-
1959년생 김경미 시인은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고 1983년 스물 네살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아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밖에서는 날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 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시 <비망록> 중 일부-
서정성이 넘치는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시인의 시는 서정성이라고 부를 감정과 그것보다 좀더 본능적인 감상의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내면에 집착해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물론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소감이다.
KBS 클래식 FM 라디오 방송 작가로 40년을 일해오다가 올해 초 그만 두었다. 그리고 라디오 작가로 있으면서 썼던 원고들을 묶어 낸 산문집도 호응이 좋다고 한다.
혼자 여행사를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는 시가 있다. 여행은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손님을 설득하는데, 자신이 손님이 되어 스스로에게 문의를 하기도 한다. '저기요, 내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쓸쓸하다면>이라는 시의 내용이다.
현재 국내 사회적 상황때문인지, 나의 감상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인지, 개인적이고 내면에 집중한 시들이 예전만큼 마음 속까지 깊이 와닿지를 않아 아쉽다.
시인은 이 시집으로 올해 "김종삼 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