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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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가 루나파크라는 홈페이지를 웹에 연재할때, 그때가 벌써 몇년 전인지 기억도 못하겠지만, 그때부터 이미 자주 들락거리며 그녀의 만화로 쓴 일종의 일기를 즐겨 보곤 했다. 




그 당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는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꽤 인기있는 희망 직종이었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TBWA나 LG Ad 같은 광고회사는 그 대표적인 회사였다. 그 중 한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그림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만화를 어찌나 단순 깔끔하고 요점 정리 잘 한 요약서처럼 그리던지, 카피라이터는 만화를 그려도 어딘가 다르구나 생각했었다. 이후 그녀가 그린 만화를 엮어 책으로도 내었고 ('루나 파크 옷걸이 통신'),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혼자 영국으로 떠나 단기 체류한 이야기를 쓴 책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도 재미있게 읽었었다. 

최근에 그녀가 유퀴즈라는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시인으로 등단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반가웠다. 그리고 예전 생각이 나서 최근에 출간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카피라이터, 만화가, 시인 홍인혜의 언어 생활'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은 그녀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가벼운 에세이라고 볼수 있다. 


불투명한 우리는 말을 통해 겨우 투명해진다. (7쪽)

그러기 위해서

말을 고르고 고른다. 거르고 거른다. 벼리고 벼린다. (7쪽)


"얘들이 새내기면 우린 이제 헌내기야?"

"아니지. 우리는 정든내기지." (31쪽)


"쟤는 참 생각 없이 밝아." (38쪽) 

고 있던 눈물이 누군가 픽 던진 이 말을 듣자마자 쏟아져 나왔다는 저자의 말이 단박에 공감이 되었다. 생각이 없는게 아니라 생각을 몇번 돌려 가까스로 눈물 대신 웃고 있는 중인데.


카피라이터도 다른 사람의 카피에 감동받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본 다음과 같은 카메라 광고 문구가 멋져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고 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 (237쪽)

'나는 기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건 내가 가끔 일기장에 끄적거리는 문장인데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행복이란 걱정과 불안이 해결된 완전무결한 상태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언제나 강박 속에 유예되었다. 모든 것이 완결된 상태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오늘을 버티며 나를 살게 할 작은 만족들을 수집했다. 잠도 자지 않고 쉴 시간도 아끼며 걷고 또 걸어 물결치는 오아시스에 당도하면 마음껏 행복해하겠다는 계획은 허상이었다. 

낙원은 멀고 심지어 없을 수도 있다. 아득한 환상에 기대기보다 사막 중간에 있는 작은 샘이나 선인장 그늘에서 작은 행복을 드문드문 발견하는 것이 내가 살 길이었다. 그것을 인정한 순간 나의 강박도 헐거워졌다. (310쪽)


나이들어 가는 과정을, 헐거워가는 과정이라고 비유하여 그녀는 또 생각을, 말을, 고르고, 거르고, 벼리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루나가, 나와 한 공간에 함께 지낼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만화나 글을 볼때마다 한번씩 해보는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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