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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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잔뜩)


아무렇지도 않게 듣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이 어느 날 문득 심상치 않게 들렸다. 내 세상.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가며 사느라 억눌렸던 나의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하는 순간 이제부턴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외로움과 불편함을 댓가로, 남들의 시선과 구설수를 불사하고, 내 세상을 살 용기가 있는 사람. 흔치 않다.


이탈로 칼비노. 태어나기는 1923년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세살때 이탈리아로 이주하였으니 쿠바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이후로 줄곧 이탈리아에서 교육받고 이탈리아에서 문학을 시작하였으며 1985년 이탈리아에서 생을 마감하고 지금까지, 현대 이탈리아 소설을 말할때 빠지지 않는 소설가로서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소설에는 남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아버지, 장군의 딸인 덕에 여장군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엄마, 열두살 형과 누나, 그리고 여덟살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이 나온다. 이중 가장 어린 여덟살 남자 아이가 화자인 '나'가 되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온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자리. 아버지로부터 싫어하는 달팽이 요리를 먹을 것을 계속 강요당한 코지모형은 식당을 박차고 나가 집 밖의 나무 위로 올라가버린다. 그리고사 앞으로 나무에서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고, 그렇게 형의 나무위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열두살 소년이 하는 말을 동생인 나를 비롯하여 가족 누구도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처음에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형은 나무 위에 머물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에 들어오기는 커녕 평소 이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아 왕래를 하지 않던 옆집 딸 비올라가 형이 머물던 나무에 그네를 타다가 만나 둘이 서로 호감을 가지며 친구가 된다. 

나는 나무위에 있는 형이 필요한 물건을 갖다주는 방법으로 형을 도와주고 형은 나무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나무 사이를 옮겨다니며 점차 나무 위의 생활에 적응해간다. 식구들은 코지모가 얼마 못버티고 내려올줄 알았던 처음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나무 위에서 보낸 처음 그 며칠 동안 코지모 형은 특별한 목적이나 계획은 없었지만 자신의 왕국을 제대로 알고 소유하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만은 가지고 있었다. 형은 마지막 경계선까지 자신의 왕국을 탐험하고 싶어했고 그 왕국이 형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 연구하고 싶었으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통해 그 왕국을 발견하고 싶어 했다. (80쪽)


나무 위로 올라가서 친구가 된 옆집 소녀 비올라는 때가 되어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가고 나무 위에서 그걸 보며 코지모형은 속상해 울음을 떠뜨린다. 

코지모형은 점차 나무들의 종류에 따라 어떤 때 어떻게 이용하는게 좋은지 구별할수 있게 되고, 땅에서와 다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직감을 갖춰 간다. 필요한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끔 집에 왕래하는 신부님을 나무 위로 불러들여 수업을 받기도 한다. 

나무 위에는 코지모형만 사는게 아니었다. 물론 코지모형처럼 땅위로는 절대 내려오지 않고 나무 위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과일 좀도둑, 산적이 있었는데 산적 잔 데이 브루기와는 친분이 생기기도 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잔데이부루기의 영향으로 형도 독서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면서 다방면의 지식을 쌓아가고 새로운 생각을 하기도 하며 책의 저자, 학자들과 편지를 나누기도 하는 등, 자신의 생각과 세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결국 항상 가까이에 있는 잔 데이 브루기때문에 코지모 형에게 독서는 소일거리가 아니라 중요한 근심거리, 하루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책을 다루고 그것들을 평가하고 구입하고 그 책에서 점점 더 많은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면서. 잔 데이 브루기를 위해 책을 읽고, 또 자신의 필요 때문에 독서를 하다 보니 코지모 형에게는 독서와 인간 지식에 대한 열정이 생겨나게 되었다. 형은 하루 종일 읽고 싶은 책만 읽었고 밤에도 램프의 불빛 아래서 계속 책을 읽었다. (160쪽)


한편 마을에 화재가 발생했을때는 나무위에서 구경만 하는 대신, 마을 사람들과 협조하고 단체를 지휘, 명령, 통솔하는 법을 배운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가고, 큰아들이 나무 위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을 감지하고 본인이 나무 위의 아들을 방문하여, 자신의 남작 지위를 상징하는 남작의 검을 물려준다. 

한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살던 삼촌이 해적에게 죽음을 당하고 그동안 삼촌이 해적과 내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아 횡설수설하는 일이 잦아진 형은 이후로 이야기하는 취미를 갖게 되어, 사실과 허구를 왔다 갔따 하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빠져든다. 사람들로부터 나무 위에서 사는 사람이 형 뿐 아니라 또 있다는 말을 들은 형은 그들을 찾아 가기도 하는데 거기서 스페인에서 추방당해 온 우르슬라라는 여자를 만나 연인이 된다. 추방령이 해제되어 그녀도 고국으로 돌아가 또한번의 이별을 맞게 되고, 그동안 아버지도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어느 정치적 단체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을 경험하고 자기의 이상대로 새로운 규율을 만들고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 위한 책을 직접 쓰기도 하지만 아무도 주목을 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프랑스 공화군이 나폴레옹 황제군으로 바뀌는 등, 사는 곳이 나폴레옹의 통치하에 들어가는 시기에 나는 나무 위에서 홀로 지내는 형을 부러워한다. 형은 어느 편에 들거나 공격하지 않으며 폭정에서 민중을 도와주는 일만 하며 지낼 뿐이다. 


나는 이 19세기, 출발도 좋지 않았고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이 세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왕정복고의 그림자가 전 유럽에 드리워졌다. 모든 개혁자들-자코뱅 당이든 나폴레옹 지지자이든-은 패배했다. 절대주의와 예수회가 영역을 장악했다. 젊은이들의 이상과 빛과 18세기의 희망은 모두 재가 되었다. (369쪽)


내게 세상이 변했음을 알려준 것은 오스트리아-러시아 군의 도착도 피에몬테로의 합병도 새로운 세금이나 내가 아는 다른 그 어떤 일도 아니었다. 바로 창문을 열고 저 나무 위에 균형 있게 앉아있는 형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370쪽)


"형님, 형님도 벌써 예순다섯이 넘었어요. 어떻게 계속 나무 위에 있을 수 있어요? 형님이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이제 다 말했어요. 우린 다 이해했다고요. 형님은 정말 강한 정신력을 가진 분이에요. 이제 내려와도 돼요. 바다에서 인생을 다 보낸 사람도 배에서 내릴 때가 있는 법이에요." (371쪽)


동생은 형이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알고 나무에서 내려올 것을 권유하는 대목이다. 과연 형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는 어떻게 최후를 맞이할까. 아마 여기까지 읽은 어떤 독자도 예상못할 방식으로 그는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난다. 


이탈로 칼비노는 (1) 어떤 의도로 이 소설을 썼을까. (2) 코지모를 통해 그는 어떤 인간형을 나타내고자 했을까. 

1. 칼비노는 1923년 태어나 1985년까지 살았었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이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변화가 많던 시기를 소환하여 그가 살던 시대를 다시 되짚어 보고자 했다.

2. 여러 주의, 이즘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그만큼 개인의 판단이 어렵고 대중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기준을 잡기가 어려운 시기에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고, 대중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할지, 코지모란 인간형을 통해 그려보고자 했다. 


코지모는 결코 보통의 삶을 평범하게 살아간 사람이 아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지 않았지만 이상한 사람, 독특한 사람, 미친 사람이라는 수군거림을 벗어날수 없었다. 지금의 우리 역시 남의 시선과 나의 생각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며 산다. 하지만 코지모 같은 결정을 내리진 못한다. 그러면서 하염없이 나만의 세상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기준과 지시에서 자유로운 삶을, 이상대로 살 수는 없을까 하고. 자유는 댓가를 치루지 않고 그냥 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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