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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7
장 자크 루소 지음, 문경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마침내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나 자신 말고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도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7)
이 책의 시작이다.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사교적이고 정이 많은 내가 만장일치로 인간 사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7)
사람들과의 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루소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맞서 사회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대중도 아닌, 나 자신의 문제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백록>을 썼고, <대화: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를 썼고, 마지막으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쓰던 중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에밀>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루소를 우리는 보통 계몽주의 철학자, 사회계약론자 등의 학술적인 분야에서 활동한 학자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식물채집에 몰두하기도 하였고 악보 표기법을 정리하여 그에 관한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으며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인간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로 사회제도, 소유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던 루소는 그의 과거 행적중 그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들이 대중에게 밝혀지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기 자신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자신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루소는 많은 시간을 산책을 하며 보냈다. 첫번째 산책, 두번째 산책...이렇게 소제목을 붙이며 써나가던 글을 열번째 산책까지 쓰던 중 세상을 떠났다.
나 자신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내게 남겨진 탐구의 주제다. (7)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관심을 가지며 사회 불평등과 인간이 비참함을 해소하고자 연구하고 글을 써왔던 그가 결국
해야했던 일은 본인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고 고백한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기도 하며 명상록이기도 하다.
자신의 저지른 일의 오류, 또는 무오류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기준과 증거 역할을 하는 것은 지식이나 이성이 아니라 양심이었다.
내 마음이 아쉬워하는 행복이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조금도 강렬하지 않지만 지속되면서 점점 매력이 커져 마침내 그 속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게 되는, 그런 단순하고도 영원한 상태다. (85)
말년에 루소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을때 끝가지 자신을 변론하며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대신 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피ㅐ야만 했다. 그럴 때는 만인의 어머니인 자연으로 피신하여 그 품에서 형제들의 공격을 면하고자 했으며 내게는 배신과 증오만을 품은 악인들의 사회보다 차라리 지독한 고독이 더 나아 보였기에 나는 혼자가 되었고 그들이 말하듯 사교성 없고 사람 싫어하는 괴짜가 되어버렸다. (115)
그리고 찾은 자연.
사람들을 피해 고독을 찾아다니고 더이상 상상하지 않고 생각도 한층 덜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생기 없이 우울한 무기력에 빠져 있지 못하는 활달한 기질을 타고난 까닭에 나는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그중 가장 기분좋은 대상들을 선택했다. (116)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다고 하여 세상으로부터 고립은 아니었다. 그는 더 큰 대상들을 찾았으니 말이다. 자연 중에서 광물계, 동물계 대신 식물계를 그 대상으로 삼아 식물학자가 된 이유가 나온다. 그리고 뒤늦게 식물학자로서의 생활을 택한 것은 식물학이라는 학문이 대단해서라기 보다 오히려 단순한 오락거리로서라고 했다. 이런 여유와 느긋함이 어쩌면 본질적인 학문의 세계가 아닐까.
책 읽기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목의 '몽상'은 '사색'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보았다. 마침 해설에 몽상에 대한 번역자의 멋진 설명이 있기에 여기 옮겨본다.
'몽상'은 무엇보다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인간을 현실에 부재하게 만드는 깊은 성찰과 명상, 그러한 상태를 야기하는 자연 속에서 모든 감각을 잠들게 하는 반수면 상태의 의미를 포괄한다. (182)
루소는 이성적인 사유 능력이란 인간이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자연에 반하는 활동이고 훈련이라고 했다. 반면 루소에게 있어 몽상은 식물채집처럼 대상물에 의해 촉발되는 즐거운 기억의 연장이기도 하고, 아무런 대상 없이 공기와 물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 채 온전히 현재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영혼 전체가 채워지는 초월적인 체험으로서의 몽상이다.
존재의 본질을 체험하는 몽상. 이것은 'daydreaming'과는 다른 차원의 체험인 것이다.
사람들과의 고립을 고독이라고 부르든 무어라고 부르든 우리에게는 여전히 우리들을 품어줄 대상이 있고 그것은 더 크고 더 깊은 행복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