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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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를 같이 나오고 한동네 살았던 친구가 있다. 등하교를 같이 할때 매일 만나면서도 매일 할 말이 끊이지 않았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 가끔 우리는 더 먼 길을 택해서 집에 가곤 했다. 책 제목이 나의 그런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의 저자 게일 콜드웰은 친구 캐럴라인과 함께 그들의 개를 산책시키며 걷는 동안 많이 얘기를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탄 후에도 대화가 깊어지면 먼 길을 택해 집에 돌아가곤 했다.

개들이 지그재그로 산길을 달려올라가는 동안 캐럴라인과 나는 이야기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오랫동안 너무 많고 너무 깊은 대화가 이어지는 기나긴 오후 여정을 우리는 분석산책이라 불렀다.

"집까지 먼길로 돌아갈까?" 차에 오를 때면 캐럴라인이 말하곤 했다. 그럼 우리는 서둘러 헤어지지 않으려고 서머빌이나 메드퍼드의 혼잡한 길로 접어들었다. (40)

작가 답게 '분석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게일은 친구 캐럴라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와의 추억을 기리는 책을 내며 그 말로 제목을 삼았다. "Let's take the long way home." 살아서 캐럴라인이 그 말을 할때 그것이 이런 책의 제목이 될줄 상상을 못했으리라. 

게일과 캐럴라인은 싱글이라는 점, 글 쓰는 일을 한다는 점, 식구 대신 큰 개를 키우고 있어서 자주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 인생의 한 기간를 알콜 의존의 시기를 경험했다는 것도 중요한 공통점이었고 그래서 캐럴라인이 여전히 거식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던 상황을 게일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일 말고 둘이 공유한 많은 시간은 운동이었다. 캐럴라인이 거식증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통로가 된 로잉, 그리고 수영을 함께 했는데 때로는 경쟁이 되기도 했지만 운동으로 정신을 극복하고 자기의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바로잡는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둘의 성격이 아주 비슷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생각의 중요한 줄기가 비슷했으니 깊은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캐럴라인은 모범생 스타일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격이었고 게일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신 그런 캐럴라인의 성격을 알아볼줄 알았고 그래서 캐럴라인을 더 배려할 수 있었으며 그녀 행동의 이면을 뚫어볼 수 있게 했다.

어릴때면 몰라도 성인이 된 후 나이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캐럴라인과 게일은 여덟살 차이가 났지만 간섭은 최소로 하면서 피해야 할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며 서로의 생활에 깊이 스며드는 방식을 알아갔다. 개 외에 가족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각자 남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우정이 방해가 되지 않았다.

캐럴라인이 암 진단을 받고나서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죽음을 향해 가는 동안 게일은 거의 정신줄을 놓다시피 한다. 친구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게일이 애쓰는 대목이 어찌나 구체적이고 생생하던지 읽으면서 가슴이 저렸다.

캐럴라인의 마지막 며칠, 친구가 힘들어하며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본 게일은 캐럴라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한동안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와중에 애견 클레먼타인까지 세상을 떠나고 게일은 살아서 남은 사람의 고통의 시간을 살아낸다. 

책의 마지막에 인용한 나바호족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 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 했다. 그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 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든 내일이라 부르든, 내러티브의 뒷이야기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다만 이것 없이는 우리의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이 안으로 무너져 파열될 것이다. 우주가 역설하는바, 모든 고정된 것은 유한하다.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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